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송영규 논설위원

2030 세대 하나 되길 원치 않고

남북 간 불평등 문제 커질 수도

평화와 통일 사이 놓인 큰 간극

이젠 어떻게 좁힐 지 고민해야

송영규 위원



1999년 초 지금은 중단된 금강산 관광 때의 일이다. 북한 장전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버스 길옆 철책선 너머 허리나 어깨에 책보를 매고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들을 봤다. 대부분 마른 체형에 키는 120~130㎝ 정도 됐을까. ‘저 정도면 초등학교 1~2학년이나 유치원생 정도 됐겠구나.’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길을 인솔하던 이는 이 학생들이 초등학교 5~6학년쯤 된다고 했다. 북한 어린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실제 봤을 때의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당시 30대의 눈에 비친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은 통일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증표였다.

강산이 두 번 바뀌며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에는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의 남과 북을 넘나들었다. 남북 관계의 봄바람을 담은 공동선언문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목표와 더불어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 공동 번영과 자주 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는 의지도 담았다. 비록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하지만 한동안 숨죽이던 통일의 염원이 시나브로 되살아나는 듯하다. 20년 전 가슴 시리게 아팠던 북녘 어린이들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펼쳐진다.


통일은 수십년간 한반도를 지배한 숙명의 단어였다. 남북이 분단될 당시만 해도 생이별한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하는 ‘현실’이었던 통일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거치면서 한반도만이 가지는 ‘이데올로기’로 이 땅에 군림했다. 서로 방식은 달랐지만 남과 북, 보수와 진보 그 누구도 ‘하나 된 민족’은 영원한 숙원이자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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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분위기는 그때와 사뭇 다른 듯하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통일보다 ‘고착화한 평화’를 더 원한다고 한다. 자유 왕래와 협력은 ‘OK’지만 물리적 통일은 ‘글쎄’라는 뜻이다. 1년 전 통일연구원의 설문 결과만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니다. 20·30대 청년들은 ‘통일’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고들 말한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부작용이나 최소 36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눈앞에 닥친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과 일자리 전쟁이라는 현실에 ‘하나의 민족’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50대 이후 세대가 물러난 후 통일의 주역이 될 2030 세대가 직면한 현실이 이렇다.

청년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남북 자유교류가 성사되면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북에 있는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광물·토지 자원과 남쪽의 자본·기술력이 결합한다면 북쪽 주민의 생활 개선은 물론 통일 한국의 한 단계 높은 성장이 가능하리라 자신한다. 설득력 있고 실현 가능한 주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뒤에 따르는 어두운 그림자의 단면은 어쩔 것인가. 남북 관계가 순조롭게 풀린다면 북쪽은 단순 노동 위주의 산업, 남쪽은 고도의 노동생산성을 가진 서비스 또는 첨단 기술 산업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노동구조의 이중성과 불평등 심화가 남쪽만이 아닌 남북의 문제로 비화할지도 모른다. 북의 노동자 유입으로 남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밀릴 가능성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이미 경험하고 있는 터다. 단순히 경제만 봐도 거대한 장벽이 펼쳐져 있는데 난마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는 또 어쩔텐가.

남북이 ‘1국가 2체제’ 또는 연방제의 과도기를 거친다고 거대한 현실의 벽이 무너질지 의문이다.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간다고 자본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중국도 베트남도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이 예외일 것이라는 생각은 과도한 낙관이다. 통일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통일이 곧 평화가 아니듯이 평화도 통일과 동의어는 아니다. 한반도에 봄 내음이 짙어질수록 깊어지는 통일에 대한 고민이다. 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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