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지지와 환영 메시지를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켜보던 재계 고위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안보 분야에서 든든한 후원자로 거듭난 트럼프 정부의 모습이 한국산 제품을 향해 연일 고강도 제재를 꺼내 드는 모습과 대조된다는 얘기였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한국산 제품을 향해 관세 포탄을 또다시 쏘아 올렸다. 미국 상무부는 2일 화학제품 일종인 PET 레진에 최대 101.41%의 반덤핑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꺼내 든 조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이날 한국산 선재에 41%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는 “안보와 산업 분야에서 트럼프는 완전 다른 사람 같다”며 “철저히 실리를 취하려는 비즈니스맨 그 자체”라고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트윗을 쏟아내며 흥행몰이에 나서는 동안에도 한국 제품을 향한 공세는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공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표 업종은 철강 부문이다. 미국은 1일 선심 쓰듯 무역확장법 232조(안보를 빌미로 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조치) 조치에서 한국을 빼준다고 발표했지만 업계의 근심은 여전하다. 면제 조건으로 한국에 쿼터제를 제시한 미국이 수출량 집계 시점을 1월로 잡는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쿼터 발효일인 5월에 맞춰 미국이 수출 물량을 집계할 것으로 판단했던 정부와 업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은 것. 쿼터에 발목 잡히기 전에 연초부터 물량을 쏟아내 왔던 강관 제조업체는 5월이면 수출 한도치를 거의 채울 것으로 보인다. 일부 강관업체는 현재 생산 중인 물량을 내보내는 6월이면 미국 수출을 사실상 중단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한국산 철강을 융단폭격하려던 계획은 거둬들였지만 개별 철강재 향한 조준사격은 여전하다. 개별 철강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한국산 제품을 틀어막으려는 셈법이다. 한국을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면제해둔다고 공식 발표한 바로 다음날 한국산 선재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데서 미국의 속내는 드러난다. 지난 3월에는 유정용 강관에 최대 75%대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한 바 있다.
미국은 화학제품을 향해서도 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PET 레진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 전에도 미국 정부는 태양광 셀과 모듈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최고 3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했다. 합성단섬유와 저융점 폴리에스터(LMF) 역시 미국 내 대만 제조업체 제소로 현재 반덤핑 예비판정을 받은 상태다.
미국의 이 같은 조처에 업계의 시름이 깊은 건 뾰족한 맞대응 방법이 없어서다. 업계 차원에서 대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 역시 맞불을 놓기 어려운 처지다. 자칫 다른 제품에까지 전선이 확장될 우려가 있는데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핵심 파트너인 미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통상 업계 전문가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가 예정된 만큼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자국 산업 감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