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사진) 삼성SDI(006400)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사각형이던 사장 회의실 테이블을 원형으로 바꿨다. 불필요한 의전을 없애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자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이런 그의 소통 방식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개발 단계부터 전 부서 직원들이 참여해 제품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하는가 하면 본사가 아닌 생산공장을 일주일에 3~4회씩 찾아 애로사항을 챙기고 있다. 혁신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로 똘똘 뭉쳐 소통해야 한다는 ‘원 팀(ONE TEAM)’ 전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전략이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를 확 바꾸는 데 도움이 됐다. 삼성SDI는 지난 2016년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의 주범이었던 회사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회사 임직원을 감싸는 한편 좋은 실적도 거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전 사장의 임기가 시작됐다. 전 사장은 “배터리 업계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며 다시 시작하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고 한다.
전 사장은 ‘갤노트7’ 이후 달라진 삼성SDI를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 품질관리실을 사장 직속조직으로 두고 권한과 책임을 강화했다. 영업에 비중을 두기보다 품질관리팀이 완벽한 품질을 자신하는 제품만 생산하게 하는 대신 책임은 품질관리팀이 지게 했다. 부서 간 칸막이도 없앴다. 개발·제조·영업 등 부서를 막론하고 임직원 회의를 수시로 가졌다.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어느 한 부서에 떠넘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외부 시장이 우호적으로 바뀐 영향도 있지만 일하는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고객사들이 갤노트7 이전과 이후 삼성SDI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면서 달라진 품질과 제품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적 개선도 뚜렷한 상황. 2년 연속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보던 회사는 전 사장 취임 첫해인 지난해 매출 6조3,216억원, 영업이익 1,169억원을 각각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2일 발표한 올 1·4분기 실적에서도 매출 1조9,089억원, 영업이익 720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대폭 성장했다. 증권 업계에서는 올 한 해 삼성SDI의 영업이익이 4,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2·4분기부터 자동차용 배터리 등에서의 영업이익 확대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SDI 측은 “1·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에 비해 감소한 것은 자동차전지사업의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리스크 때문”이라며 “초기 수주한 프로젝트들의 수익성 개선이 당분간 어렵겠지만 거래조건 재협상 및 원가 절감으로 손익 개선 시점을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전 사장은 삼성SDI만의 무기를 강조하고 있다. 전 사장은 1월 신년사에서 기마병이 말 위에서 활을 안정적으로 쏠 수 있게 해 전투력을 높인 ‘등자’를 언급하며 “몽골의 ‘등자’처럼 삼성SDI만의 등자를 갖춰나가자”고 주문했다. 전 사장은 최근에도 “현재 7~8개의 배터리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몇 년 뒤 2~3개밖에 안 남을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와 노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