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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부터 군사력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던 러시아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군비 지출 규모를 줄였다.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맛’과 극초음속 미사일 ‘아방가르드’ ‘킨잘’ 등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러시아가 결국 오랜 서방의 경제제재에 자존심을 굽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세계 군사비 지출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지난해 군비 규모는 663억달러(약 70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20% 급감했다. 이는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내몰렸던 지난 1998년 경제위기 이후 처음이다. 세계 군비 순위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4위에 그쳤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군비를 줄인 것은 2014년부터 시작된 서방 경제제재의 영향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점령으로 병합한 후 서방이 실시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제재와 수년 동안 이어진 저유가 기조가 러시아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시에몬 베세만 SIPRI 수석연구원은 “러시아에 군사 현대화는 최우선 과제지만 2014년 이후 경제 악화로 국방 예산이 제한되고 있다”며 “러시아는 이제 높은 수준으로 군비 규모를 유지하거나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러시아는 앞으로 5년 이내에 국방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 이내로 줄일 것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전 세계 군비는 1조7,390억달러로 전년보다 1.1% 증가했다. 군비 지출 부동의 1위인 미국은 전년과 동일한 6,100억달러를 쏟아부어 2010년 이후 이어졌던 군비 감축 추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중국은 전년 대비 5.6% 증가한 2,280억달러의 군비를 지출해 2위를 차지했으며 최근까지 중국과 대립해온 인도는 5.5% 늘어난 639억달러의 군비 지출로 프랑스를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날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군비는 4위인 사우디아라비아(9.2%)의 군비 확대에 힘입어 전년 대비 6.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392억달러로 10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