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요거트’로 이름을 알린 윤용진(47·사진) 밀키요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삼청동의 ‘정치사’와 함께했다. 2015년 4월 삼청동에 가게를 낸 이후 밀키요는 청와대에 요거트를 배달하는 업체로 SNS에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메르스, 국정농단, 사드 문제 등 삼청동 골목상권의 ‘정치적 리스크’도 매년 겪었다. 삼청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창업 초기부터 경험했다. 윤 대표는 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창업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요거트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했다고 밝혔다.
◇밀키요와 맞닿았던 삼청동의 정치 난맥상=밀키요는 창업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모두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윤 대표는 처음 청와대에 배달을 가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청와대 분들이 이곳에 산책을 많이 오는데, 몇몇 비서관과 행정관이 우리 요거트를 먹고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청와대에 배달해줬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처음엔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비서실에서 전화가 오더라. 요거트 먹으면서 회의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윤 대표는 두 청와대의 차이를 실감했다. 대표적인 게 배달 절차다. 박근혜 정권 때는 요거트를 배달하기 위해 청와대 영풍관에 있는 검색대를 거쳐야 했다. 두 번의 검사를 거쳐야 무사히 요거트가 청와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윤 대표는 “청와대에 요거트를 들여오는 데만 한 30~40분은 걸렸다”고 회상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춘추관과 영풍관에 있는 매점에 갖다놓으면 배달이 끝난다.
청와대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점 때문에 정치 난맥상은 곧바로 매출로 직결되곤 했다. 창업하자마자 터진 메르스 사태는 윤 대표에게 치명타였다. 이후 그나마 상권이 안정돼 여유가 생겼을 땐 국정농단 사태가 찾아왔다.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개방으로 손님이 많이 찾아올 거란 기대감이 커졌지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삼청동에 찾아오는 손님은 다시 줄었다.
특히 국정농단 사태는 밀키요에게 보릿고개였다. 청와대로의 배달이 끊기고 경찰의 검문이 심해지면서 삼청동으로 찾아오는 손님도 줄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당시 청와대가 국정농단 사태로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회의가 없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끊어졌던 거래선은 새 정부가 들어오고 다시 연결됐다. 윤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온 지 1주일 후 새로 보는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 월요 조찬회의 때마다 배달해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배달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윤 대표는 당시 삼청동 상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삼청동 특성상 정치색이 굉장히 짙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대기업 매장들도 못 버티고 나갔다. 매장 앞 골목만 해도 경찰 트럭들이 다 막고 있었다. 삼청동에 들어오는 손님은 물론이고 영업하는 점주들까지 경찰의 검문검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6개월 정도는 장사를 못했다.”
◇창업 초기부터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윤 대표는 어릴 적 성북구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도 삼청동 근처 용문고를 나왔다. 이런 그에게 삼청동은 시내로 갈 때마다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던 길목이었다. 이때의 추억은 삼청동에 첫 가게를 차렸던 계기였다.
영업을 시작한 2015년 삼청동에선 한창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골목상권엔 대기업이나 거대 프랜차이즈가 들어섰다. 윤 대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삼청동엔 예쁜 공방과 작은 카페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스타벅스, 커피빈, 대기업 화장품가게, 이마트24 등이 즐비하다”며 “삼청동도 가로수길처럼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윤 대표는 “여기 있던 점주들도 서촌이나 익선동 쪽으로 많이 빠졌다”며 “젊은 사람들도 그쪽으로 많이 이동했다”고 전했다.
대기업이 영향을 끼쳤던 것은 골목상권뿐만이 아니었다. 밀키요의 제품을 눈여겨보던 프랜차이즈들이 제안을 걸어왔다. 한번은 한 프랜차이즈가 윤 대표에게 OEM(주문자 위탁생산) 제품을 생산하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밀키요가 자체 생산한 요거트를 프랜차이즈 상표를 달고 팔자는 것이었다. 윤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상품을 OEM으로 팔 순 없었다”며 거절 사유를 밝혔다.
◇“요거트에 대한 애정으로 버텼다”=윤 대표는 이 같은 난맥상을 요거트 개발과 온라인 유통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창업 초기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부드러운 요거트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목장주들을 쫓아다녔다. 좋은 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윤 대표는 “이때 1차 산업 하시는 분들이 진짜 장인이라고 느꼈다”며 “시골 좁은 길을 많이 다닌 나머지 논두렁에 차가 빠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온라인 유통은 삼청동 입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기반이다. 2016년 삿갓유통이라는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상품을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온라인 매장을 확보하니 지방 사람들은 물론 몸이 불편한 고객에게까지 요거트를 배달할 수 있었다. 윤 대표는 한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서초동에 사시는 한 할아버지가 계신다. 식사를 잘 못하시는데 요거트는 먹을 수 있다고 하셔서 자주 주문하셨다. 그때마다 직원이나 택배기사를 통해 배달을 했다. 근데 요즘 연락이 뜸하셔서 걱정이 된다.”
이 두 노력을 바탕으로 밀키요는 매일 1,000개 이상의 요거트를 판매하고 있다. 지방에도 수요가 늘어 압구정 갤러리아명품관, AK플라자 분당점 등에 식품관을 열었다.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요거트 개발과 유통에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이유는 윤 대표 본인이 요거트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윤 대표는 “어렸을 적 장이 안 좋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요거트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몸이 좋아졌다”며 “내가 실제로 건강 효과를 본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팔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은 요거트가 ‘건강한 먹거리’라는 믿음을 만든 원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