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제2, 제3의 ‘스타일난다’를 기대한다

엑시트 성공 사업가 늘어나야

창업 활성화·경제활력에 도움

'과감한 도전' 이어질 수 있게

정부가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지난 1997년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요시 바르디의 아들이 미라빌리스라는 소프트웨어회사를 세웠다. 1년쯤 후 이 업체는 MSN메신저·네이트온 등 대다수 메신저프로그램의 모태가 된 세계 최초 인터넷 메신저 ‘ICQ’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창업 19개월 만에 미국 최대 통신·인터넷서비스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AOL)에 4억달러에 팔렸다. 초기 투자금이 75만달러였으니 500배가 넘는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성공한 셈이다.

미라빌리스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에는 의사·변호사 대신 장래 희망으로 창업가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미국 포브스가 당시 창업 열풍을 ‘미라빌리스 효과’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스타트업 선진국인 이스라엘에는 ‘하나를 빨리 키워서 적당한 가격에 팔고 그것을 기반으로 또 다른 사업에 도전하자’는 창업문화가 있다. 나스닥에 상장한 다음에도 사업을 접고 새 사업에 뛰어드는 창업가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뛰어들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남보다 먼저 도전해 핵심 기술을 선점하는 게 목표다. 2014년 구글에 인수된 슬릭로그인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첫 서비스를 선보인 지 5개월 만에 구글에 수백만달러에 매각됐다. 슬릭로그인이 개발한 음파 인증 기술은 구글이 필요로 하던 이중보안 로그인의 핵심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이 사업 모델을 구상할 때부터 구글에 팔리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이스라엘 벤처는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처음부터 글로벌 니즈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다”며 “세계 시장에 빨리 뛰어들어 ‘페인포인트(painpoint·고민점)’를 일찍 간파한 게 성공비결”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맞춤형 글로벌 전략으로 이스라엘 벤처들이 2016년에 달성한 엑시트 사례만도 우리의 네 배인 100건이 넘고 규모도 100억달러에 달한다. 창업가들이 회사를 팔아치웠다고 사업가·기업가정신이 바랬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투자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엑시트 모델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하이테크 선진국, 이스라엘 경제를 떠받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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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프랑스 로레알그룹이 한국 토종 패션·화장품 기업인 ‘스타일난다’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추정 인수 가격은 5,700억~6,000억원대. 세계 1위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사들인 것은 스타일난다가 처음이다. 매각가격과 함께 화장품 본고장인 프랑스가 한국 제품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창업자 김소희 대표는 22세 때인 2005년 인터넷 쇼핑몰 스타일난다를 설립한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창업 1세대다.

김 대표는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합리적인 소비자 특히 중국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남다른 열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4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후 매년 10~20%씩 성장해 지난해 1,600억원을 넘었을 만큼 스타일난다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이렇게 잘 나가는 회사를 매각하자 시중에는 대박을 친 데 대한 부러움 못지않게 ‘성공 신화’를 팔아버린 데 대한 눈총도 적지 않다.

김 대표처럼 회사를 키운 뒤 외국계 업체나 사모펀드에 매각한 일부 창업가를 들먹이며 기업가정신의 실종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기업을 키워가지 않고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고 해서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일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기업가정신에 대한 생각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중후장대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창업가도 있어야 하지만 투자금 회수의 성공 경험을 살려 새 분야에 과감히 도전·개척하는 기업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엑시트 성공 사업가가 많이 등장하면 창업 활성화와 경제활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이 첫 성과를 기반으로 다른 부문에 도전할 수 있도록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주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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