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무분별한 차입자금으로 외형을 확대한 기업들의 규제에 나서며 국내 자본에 투자 기회를 주고 있다. 중국 대기업이 사들인 글로벌 주요 기업과 부동산 자산이 대거 매물로 나오고, 그 중에는 국내에서 사들인 기업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에 걸려 막판에 투자가 엎어지거나 중국 자본은 물론 글로벌 자본에도 밀리는 국내 여건상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가 위탁 경영하고 있는 안방보험이 8일 자산 매각을 검토중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그동안 매각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안방보험이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안방보험이 소유한 동양생명과 ABL생명(옛 알리안츠생명)이 매물로 거론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홍콩 투자업계를 통해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에 비공식적으로 인수 의향을 타진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다만 아직은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동양생명 매각이 진행되면 은행중심 금융지주사의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동양생명은 지난해 1,844억원으로 안정적 수익을 달성했고, 보험사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도 211.25%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보고펀드와의 육류담보대출 관련 소송에 패소하더라도 충당금이 충분해 잠재부실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슷한 자산 규모로 매각이 진행 중인 ING생명에 비해 RBC나 순익은 절반 수준이지만 인수 가격을 비교하면 동양생명이 ING생명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해외 자본에 경영권을 주지 않던 오랜 규제까지 풀며 투자 문호를 열고 있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중국기업이나 자본과 합작사를 세워야 하고 외국자본의 지분은 49%로 제한하는 족쇄를 지난해 말 푼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중국 정부에 지분 51%를 보유하는 합작 증권사 설립을 신청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전했다. 중국은 향후 외국자본의 단독출자 증권사 설립도 허용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보수적으로 운영하던 금융업계 규제까지 푼 것은 트럼프 정부의 압박 영향도 있지만 해외 선진금융을 통해 자국 금융산업을 키우겠다는 복안으로도 해석된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에 펀드를 운용중인 모건스탠리프라이빗에쿼티(PE)도 최근 중국 내 투자를 늘리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해외 자본에 대해 규제가 크다고 알려져 있지만 중국 당국이 원하는 요소를 맞추는 해외 자본은 최근 투자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다만 국내 자본이나 기업의 중국 투자가 현실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현실론이 아직은 크다. 안방보험이 보유한 동양생명 등 원래 국내 기업이 아닌 중국 내 자산이나 중국이 들고 있던 글로벌 기업에 국내 자본이나 기업이 투자하기는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다. 미래에셋대우(006800) 등 국내 투자업계가 올해 초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하이난항공(HNA)그룹의 3조5,000억원 규모 자본재조정(리파이낸싱)을 추진했지만 중국 당국이 리파이낸싱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매각으로 전환됐다.
자본 규모도 차이가 크다. 노무라증권만 해도 자기자본 규모가 국내 대형 IB보다 4~5배 이상 큰 28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자기자본 규모 1위 금융회사만 비교해도 국내는 신한은행이 21조원인 반면 중국은 공상은행이 367조원으로 글로벌 1위 수준이다. 임병익 중국창신경제연구소장은 “중국 내 자산 투자를 놓고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도 밀려난 경우가 있다”면서 “중국이 보유한 해외자산에 대한 국내 자본의 투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