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꽃다운 나이에 세상 등진 아이들 아직 아른거려..종교인이 힘겨운 사람 돕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

■ 이사람-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곁에서 지켜본 세월호 참사 4년

“어떻게 그 날을 잊겠어요. 벌써 4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날 금강 스님은 1,000일을 목표로 밖에 나가지 않고 사찰에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사고 소식이 들렸다. 사찰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지척인 거리,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했고 꽃다운 나이의 학생 250명을 비롯한 304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깐 사찰 밖에 나가 바람을 쐬려 했는데 저 멀리 조명탄을 터트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더 기다릴 수 없었어요. 그 많은 인원이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스님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달려갔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떡과 죽을 만들어 제공하고 피해자 가족을 만나 상담하고 예불을 올렸다. 진도 스님들과 대흥사·송광사·화엄사·백양사 스님들이 팽목항과 체육관 옆에 임시 법당을 차리기도 했다. 아침에는 수행과 부처님오신날 준비 등 사찰의 일을 보고 오후에는 진도로 건너가는 삶을 반복했다.


“몸을 던져서라도 구하고 싶었어요. 어떤 신통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없으니 더 답답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연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은화, 다윤이 어머님도 자주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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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참사는 정쟁의 대상으로 변해갔다. 세월호의 인양 여부를 두고 찬반이 나뉘었다. 스님은 이런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조선 수준이 세계 최고인데 배 하나 정도는 금방 건져서 조사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기류가 이상해졌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제게 와서 ‘우리 아이가 아직 바다에 있는데 어떡하나’라고 물었습니다. 오죽 갈 곳이 없으면 제게 왔겠습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 입에서 인양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광화문에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올라갔습니다.”

그 사이 대통령이 탄핵 되고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세월호는 인양돼 바로 섰다. 스님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힘줘 말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스님은 덧붙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런 작업이 정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큰 사고가 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고가 났는데 최선의 조치를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방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요. 빨리 인양하고 조사해서 정리하면 끝날 일이에요. 숨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스님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수도자가 현실 사회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만큼 수행에만 몰두해야만 한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스님은 그런 의견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해요. 요즘 물질·경쟁만능주의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직무 유기입니다.”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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