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자율화를 하고 직급 호칭을 없앴지만 정작 아랫사람 의견은 듣지 않습니다. ‘청바지 입은 꼰대’들이 아직 많습니다.” (중견기업 대리 A씨)
“강제 소등하고 1장짜리 보고서 캠페인을 했지만 변한 게 없습니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스탠드 켜놓고 일하고 1장짜리 보고서에 첨부자료만 30~40장입니다.” (대기업 차장 B씨)
대기업 및 중견기업 직장인 2,000여명 중 88%가량이 지난 2년 전에 비해 후진적 기업문화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야근·회의·보고 등에서 비효율과 소통 부족이 여전하다는 의견이다. 조직 경쟁력을 측정한 ‘조직건강도 분석’에서도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14일 ‘한국 기업의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2016년 1차 진단 후 2년간의 개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지만 여전히 비효율과 소통 부족이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기업문화 개선 효과를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88%가량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59.8%는 ‘일부 변화는 있으나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고 ‘이벤트성일 뿐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응답은 28.0%에 달했다. ‘근본적인 개선이 됐다’는 응답은 12.2%에 그쳤다.
세부 항목별로는 ‘야근’이 31점에서 46점으로 개선됐으나 50점을 밑돌았다. 회의(39점→47점), 보고(41점→55점), 업무지시(55점→65점)도 모두 상승했지만 낙제 수준이었다. 회식은 77점에서 85점으로 유일하게 ‘우수’로 평가됐다. 기업문화 개선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도 ‘무늬만 혁신’ ‘재미없음’ ‘보여주기’ ‘청바지 입은 꼰대’ ‘비효율’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기업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야근·회의·보고 등 주요 항목은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게 현실”이라며 “기업의 개선 활동이 대증적 처방에 치우쳐 있어 조직원들의 피로와 냉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대기업 3개, 중견기업 3개, 스타트업 2개 등 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직건강도 분석에서도 7곳이 글로벌 기업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맥킨지가 9개 영역, 37개 세부 항목으로 조직 경쟁력을 측정한 결과 4개사가 최하위 수준이고 3개사가 중하위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1개사가 중상위 수준으로 평가받았고 최상위 수준은 없었다. 세부 영역별 진단 결과를 보면 리더십·외부지향성·역량 등 대다수 항목에서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에 뒤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책임소재·동기부여 항목에서는 국내 기업이 상대적 우위를 보였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전근대적이고 낡은 한국 기업의 운영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 반기업 정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당면 과제의 근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문화 혁신을 필수과제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인 개선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는 4대 개선 과제를 제안했다. ‘빠른 업무 처리’를 비롯해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조직체계 △자율성 기반의 인재 육성 △톱다운 방식이 아닌 수평적 리더십 육성 등이다. 구체적으로 대한상의는 ‘빠른 실행’에 중점을 둔 ‘시행착오 기반 모델’ 도입을 주문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곧바로 개선해나가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부서별 칸막이를 없애고 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가질 수 있도록 ‘소규모 자기완결형’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빠른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역량으로 유연성을 꼽지만 이에 적합한 체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조직은 흔들리게 된다”며 “프로세스, 구조, 인재 육성, 리더십 등 조직운영 요소 전반에 걸쳐 ‘역동성’과 ‘안정적 체계’를 동시에 갖춘 ‘양손잡이’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의는 기업문화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콘퍼런스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울러 업무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자 및 기업문화 표준 매뉴얼도 제작·배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