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투자정보가 전혀 없는 정체불명의 암호화폐(코인)를 상장하려다 여론의 비판에 하루 만에 취소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새 코인을 상장하면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린다는 점을 악용해 거래 수수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코인을 일단 상장부터 하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빠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빗썸의 경우 논란이 되자 코인 상장 일정을 연기했지만 1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비슷한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어 거래소들이 암호화폐 투기를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빗썸은 팝체인이라는 암호화폐를 17일 상장하기로 공지했다가 투자자들의 ‘빗썸이 수수료 장사를 위해 무리하게 코인을 상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자 하루 만인 이날 돌연 일정을 연기했다. 빗썸 측은 자사 홈페이지에 “다른 거래소에 팝체인 상장이 결정된 후 빗썸에서 거래되도록 할 것”이라고 연기 사유를 밝혔다.
논란의 발단은 빗썸이 지난 15일 정체불명 코인인 팝체인을 상장한다고 예고하면서 벌어졌다. 팝체인은 전 세계 1,410여개 코인의 정보가 모인 암호화폐 정보제공 사이트 코인마켓캡에도 정보가 전무할 정도로 ‘듣보잡’ 코인으로 분류된다. 더구나 팝체인은 암호화폐 공개(ICO)를 통해 시장성을 평가받은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개발자들은 자금을 빠르게 조달하기 위해 투자자를 대상으로 ICO를 진행하지만 팝체인을 개발한 팝체인재단은 ICO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팝체인의 비즈니스모델에 참여한 A업체의 경력도 논란이 됐다. A업체는 음란 개인방송을 내보내는 B업체를 운영하는 회사로 성장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빗썸 측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코인 상장 일정을 공개했다면 성장성이 떨어지는 코인을 상장하고 투자자들의 거래를 유도해 거래 수수료를 챙기려 한 게 되는 셈이다. 거래소가 단순히 코인 거래를 위한 인프라만 제공한다고 해도 성장성 없는 코인을 상장했다는 점에서 모럴해저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빗썸의 상장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암호화폐 미스릴은 지난달 빗썸에 상장될 당시 250원의 가격을 유지하다가 약 2시간 뒤 1만% 넘게 치솟으며 2만8,000원까지 올랐지만 한 시간도 안 돼서 1,400원대로 급락했다. 이 때문에 빗썸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빗썸이 수수료 장사를 위해 무리하게 상장을 시도했다”는 반응이다. 투자자들도 격앙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올라온 ‘빗썸 코인 상장 합당성 전수조사해 주세요’라는 글에는 하루 새 500여명이 서명에 참여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지난해 11월 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기과열에 대해 ‘사회병리 현상이 되고 있다’며 공개 경고하자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 잇따랐고 그 결과 과열 양상이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실명거래 전환 등으로 신규 자금유입이 줄어들면서 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암암리에 투기를 부추기는 양상이 되고 있어 정부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일부 거래소들이 암호화폐의 시장성 등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아무런 근거 없이 상장하고 있어 나름의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불분명한 코인의 등장은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