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마룡리 전원일기6> '첫 작품'

‘각자 소질 개발’하는 시골생활

전기톱으로 나무 자르고 못 박고...

첫 작품 ‘목재 화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강제적으로 암기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이다.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머리에 박힌 구절이다. 그 구절 중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 부분은 요즘 들어 새삼 뼈저리게 다가온다.


시골로 이사 와서 그냥 살아가면 되겠지 했는데 오산이었다.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한 몇몇 이웃과 비교되는 아픔을 겪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나무를 갖고 노는 기술이랄까. ‘그들’은 쓰고 남은 목재로도 어엿한 ‘작품’을 만들며 엄마들의 이야깃거리에 오르내리곤 한다. 그 와중에 은근히 나를 비위 상하게 하는 아내의 말. “아조 아빠는 개 집도 만들고 울타리도 예쁘게 꾸미는데, 당신은…” 더군다나 ‘그들’은 나와 다르게 서울 출신들이다. 경북 시골이 고향인 나보다 더 자연과 가까워 보여 자괴감이 들 정도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나무 하나 능숙하게 다룰 줄 모르다니…

그래서 결심했다. 와이프가 늘 얘기하던 ‘목재 화단’ 만들기에 도전했다. 몇 만원이면 살 텐데 뭐 하러 고생하나 싶기도 했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먼저 목재 가게에 가서 3m 정도 되는 방부목을 구입해 자동차 트렁크 문을 연채 집으로 가져왔다. 짐을 그렇게 싣고 가면 안 되지만 시골에선 가까운 거리 정도는 가능하다는 사장님 말씀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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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으로 나무를 재단하고 있다.전기톱으로 나무를 재단하고 있다.


‘목재 화단’을 만들려면 바닥 부분부터 짜는 게 일하기 쉽다.‘목재 화단’을 만들려면 바닥 부분부터 짜는 게 일하기 쉽다.


오전부터 시작한 작업 끝에 ‘목재 화단’ 2개를 완성했다.오전부터 시작한 작업 끝에 ‘목재 화단’ 2개를 완성했다.


부식을 막기 위해 오일스텐을 바르고 흙을 채워 화살나무를 심은 ‘목재 화단’ 완성품.부식을 막기 위해 오일스텐을 바르고 흙을 채워 화살나무를 심은 ‘목재 화단’ 완성품.


이제 공구준비를 할 차례이다.

쓸 일이 많을 것 같았는데 전동드릴 세트를 참 오랜만에 꺼냈다. 얼마나 안 썼는지 충전이 안 돼 있어서 1시간 정도 충전 후 작업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나온 목재 화단들을 참조했지만 구체적인 작업순서가 나와 있지 않아 완성품을 보며 비슷하게 맞춰 나갔다.

여기서 가장 필요한 건 전기 톱. DIY에서 빠질 수 없는 ‘직소(jig-saw)’이다. 일명 실톱이다. 이 공구는 ‘저마다의 소질’을 갖춘 ‘그들’ 중 한명한테서 빌렸다. 전기톱이라고 해서 편할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써보면 손잡이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얇은 나무는 괜찮지만 두꺼운 목재를 자를 땐 온몸에 힘을 줘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날은 날씨까지 더워 애를 먹었다. 길이별로 수십 개를 재단하고 또 수많은 드릴 작업까지 하다 보니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길이를 잘못 계산해 다시 해체까지. 목재 화단 2개 만드는데 반나절 이상은 걸렸다. 그리고 나무가 부식 되는 걸 막기 위해 오일스텐까지 발라주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쯤 퇴근한 아내에게 시위하듯 ‘작품’을 보여줬다. 반응은 “음…잘 만들었네”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엔 에어컨 실외기 박스도 만들어보란다. 나무로 감싸면 예쁠 것 같아서라나.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나를 슬슬 부추긴다.

누리는 만큼 할 일이 많은 게 전원생활이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때론 흙도 퍼 나르고 삽질하며 ‘노동’을 한다. 비가 많이 올 땐 배수로도 파줘야 한다. 확실히 도시에서 살 때와는 질감이 다른 땀을 흘린다. 반란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다. 노동을 통하여 끝없는 힘이 솟아난다.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시골 생활에서 필요한 ‘노동’만큼은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이곳에 살아가는 법칙이겠다. /최남호기자 yotta72@sed.co.kr

최남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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