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논란이 불거지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 요인과 동결 요인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경기침체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한은은 오는 24일 5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연 1.5%)를 결정한다. 시장에서는 실물경기 부진이 ‘숫자’로 확인되면서 인상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과 미 금리 인상에 대비한 ‘선제적’ 인상을 점치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우상향’하는 시장금리와 가계부채=대외적 요인은 인상 쪽에 힘을 실어준다. 무엇보다 다음 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거의 확실시된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1.5~1.75%로 한국보다 0.25%포인트 높다. 미국이 6월에 금리를 인상하면 금리는 0.5%포인트 차로 벌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시장금리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한때 3.1%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나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7~2.8%대로 미국보다 0.4%포인트 차 벌어져 있다. 금리 차가 더 벌어지면 ‘자본유출’ 우려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가계부채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문제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꺾이고 거래가 실종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은 줄었으나 신용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을 증가일로에 있다.
◇실물경기 총체적 난국…원화 강세도 ‘부담’=실물경기는 금리 인하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경기의 바로미터인 전산업생산 증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고용은 ‘쇼크’ 수준이다.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면서 적정수준(30만명)을 크게 밑돌고 있다.
최근 목표치(2%)에 근접해가는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최저임금 인상, 농산물 작황 부진,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이기 때문이다. 수요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인플레이션은 1.4%로 여전히 바닥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논리는 수요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을 전제로 한다”며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공급 측 요인으로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손대기 난감해진다”고 말했다.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녹록지 않다. 반도체 업황 호조에 기대 73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물량 기준으로는 세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한 원화 절상도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신흥국 통화와 달리 원화만 강세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강세속도가 빨라지면서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에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 “인상 시기 늦춰질 것”=이번 금통위의 관전포인트는 소수의견이 나올지 여부다. 최근 금통위는 소수의견이 나온 뒤 1~2달 뒤에 금리를 변경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5월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이 나오고 7월에 인상을 단행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한 경제전문가는 “미국 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렵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향후 경기침체시 금리를 내릴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며 7월 인상을 점쳤다. 반면 금리 인상 시기가 10월 이후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최근 골드만삭스도 인상 시기를 10월로 늦춰 잡았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반도체 수출 호조로 성장률이 높게 나오지만 이는 착시현상”이라며 “실물경기가 부진한 상태에서 7월 금리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반도체를 제외하면 소비·투자·수출 모두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라며 “금리를 올리면 부진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