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는 길도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가셨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2일 경기 곤지암 인근 숲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구 회장의 발인식이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엄수됐다.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오전8시30분께. 구 회장의 맏사위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장례식장 지하 1층에서 고인의 영정을 품에 안고 지상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영정사진 속 구 회장은 밝은 표정으로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구 회장을 직접 모셨던 비서 등 LG 직원 6명이 운구했고 그 뒤로 LG 후계자인 장남 구광모 LG전자 상무 등 유족이 따랐다. 구 상무는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고인의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맨 뒤에 따라오면서 한시도 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간간이 하늘을 쳐다보며 큰 형님을 멀리 보내는 슬픔을 안으로 삭혔다.
슬픔을 누르지 못한 유족 일부가 울음을 터뜨렸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발인식이 진행됐다. 총수임에도 회사장(葬)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고인의 유지와 유족 뜻에 따라 화장 후 수목장으로 마무리됐다. 뼛가루를 나무뿌리 주변에 뿌리는 친환경 장묘 방식이다. 화장은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진행됐고 장지까지는 구 회장의 직계 가족만 따라갔다. 새와 나무를 사랑했던 구 회장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도 새와 나무가 가득한 곤지암 인근의 한 숲이었다.
재계 4위 LG그룹 총수였던 구 회장의 조용한 장례식은 겸손하고 남에게 피해 주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구 회장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했고 LG 사업장에 분향소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회사 차원의 추모 열기가 동원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구본무 신드롬’이 일 정도로 그의 생전 소탈했던 모습이 재조명됐다. 인터넷에는 “우리나라에도 구 회장 같은 소탈하고 평범한 재벌 회장님이 있었느냐”는 글들이 쏟아졌다. 저마다 구 회장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으며 추모했다. 회사에서, 음식점에서, 곤지암 연수원에서 만난 구 회장에 대한 미담 글들이 이어졌다.
구 회장의 마지막 길은 재벌 총수답지 않은 그의 겸손한 평소 모습과 함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는 자신을 ‘대한민국 한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일반인이 “회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인간 존중의 경영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직접 쓴 A4 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가 놓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 회장 같이 존경받는 기업인이 우리 사회에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