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4차 산업혁명에도 남북 상생의 길 열려있다

WHO 등서 지원 받은 북한

중앙-지방 원격의료체계 구축

내달 북미정상회담 성공땐

한국기술·장비·SW 등 제공

ICT분야 시너지 낼 수 있어

고광본 선임기자




함경북도 청진시 중소병원을 찾은 김은정(가명·67)씨. ‘옆구리가 아프고 호흡이 가쁘다’고 호소하는 그에게 의사는 여러 검사 끝에 평양의대병원을 화상으로 연결해 진단을 받도록 했다. ‘먼 거리 의료봉사’라고 불리는 원격의료 시스템을 가동한 것이다. 의료기록을 공유해 협진하고 수술지원 체계도 구축해 시너지를 낸다. 이는 북한이 결핵 등 전염병 환자가 11만여명에 달하는데다 낙후된 지방 의료시설과 도로, 이동 제한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방안이다.


북한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전국 213개 중앙·지방병원 연계 원격의료 체계를 구축했고 확대추세에 있다. 지난해 김일성종합대 첨단과학연구원에서 ‘명의원’이라는 가정용 의료진단·치료지원 애플리케이션도 내놓았다.

이처럼 소프트웨어(SW)에 강점이 있고 2013년부터 통신설비 국산화에 나서고 있으나 아직은 정보통신망·대용량컴퓨터·영상장치·전문인력 등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광케이블·서버·중계기 등의 장비도 뒤처져 있고 전파나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소외 지역도 적지 않다. 북측도 가정에서 바로 병원과 원격진료를 하는데는 한계가 뚜렷한 셈이다.


따라서 “남북 간에 원격의료 SW 공동개발, 장비지원, 의료협력센터 설립 등 정보통신기술(ICT) 협력이 이뤄지면 시너지가 날 것”(서소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는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해 한반도 해빙무드가 조성되면 대북 원격의료 기술과 장비·SW를 제공해 윈윈(Win Win)할 수 있는 셈이다. KT가 시베리아 대륙횡단열차와 러시아 병원 간 원격의료 체계를 구축해 중증 심혈관·호흡기 환자들을 관리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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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입장에서도 원격의료와 헬스케어 산업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북한에 적용하면 이익이다. 현재 군(軍)과 낙도·원양어선 등에서 시범적으로만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효용성을 북측에서 검증할 수 있다. 각종 규제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힘을 받지 못하는 4차 산업혁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뛰어난 의료·IT 기술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의 첫 단계’라는 오해를 받고 의사들도 저항이 심해 확대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북에 원격의료 등을 지원해 실험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러닝이나 문화·역사 콘텐츠, SW 분야도 남북의 유망 IT 협력 모델로 꼽힌다. 북에서는 종이도 아낄 겸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과서가 태블릿에 탑재돼 있고 음성서비스도 된다. 원격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자료도 공유하고 강의를 들으며 질문도 할 수 있게 돼 있다. 비록 장비와 기술이 떨어지고 교육콘텐츠의 다양성도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육·문화콘텐츠를 공동제작하거나 과학기술과 IT 남북 인력교류부터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라고 정부에서도 보고 있다. 온라인·모바일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도 함께 개발하면 ‘뽀롱뽀롱 뽀로로’의 성공사례처럼 세계 어린이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원격 화상통화 시스템으로 8·15광복절에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절대다수인 이산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도 있다. 4·27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6월 중 개성에 문을 열게 되면 현지에 남북방송통신교류협력센터도 가동해 방송 프로그램 공동제작과 교환, 통신 분야의 표준화 작업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 조문수 숭실대 산업정보시스템학과 교수는 “유엔 제재와 무관한 콘텐츠 제작이나 인력교류, 컴퓨터용어 표준화부터 나서고 장비지원 등은 제재 해제에 맞춰 추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모쪼록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와중에 남북이 공생공영하는 새 길을 개척하기를 기대해본다.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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