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블랙리스트 유령'에 1년 휘둘린 사법부

■특조단 '3차 조사결과' 발표

조직적·체계적 리스트 없고

인사 불이익 정황 발견 못해

'법원 혼란' 김명수 책임론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때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세 번에 걸친 조사를 진행했지만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1년여에 걸친 조사로 사법부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지만 실제 물증은 전혀 건지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세 번째 회의를 열고 102일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먼저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사용한 법원행정처 컴퓨터 4대에서 406개의 의혹 파일을 조사했으나 특정 성향 법관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한 흔적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게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줬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동향·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만 존재했다는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조사단은 이 결과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게시했다. 조사단은 “재판과 관련해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한 것이나 그들의 성향 등을 파악했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조사단은 지난달 11일 연 2차 회의에서 임 전 차장 등이 사용한 법원행정처 컴퓨터 4대에서 파일 406개를 추려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같은 달 16일부터 최근까지 파일을 작성한 사람과 보고받은 사람 등 인적 조사를 진행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정치적으로 개입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 문서도 조사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해 ‘BH(청와대)가 흡족해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컴퓨터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판사들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려 했다는 내용의 문서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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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5A21 사법부블랙리스트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면서 ‘무리한 의혹 제기’ 또는 ‘세 번째 부실한 조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두루뭉술한 결론 속에 실속 없는 조사만 한 꼴이다. 조사단은 “사법부 관료화 방지책과 재판 독립 침해 시정 장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결론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이미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1차 조사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핵심 물증인 법원행정처 컴퓨터는 조사하지 않은 채 지난해 6월 ‘사실무근’으로 서둘러 결론을 냈다.

부실한 1차 조사에 대해 일선 판사들은 즉시 반발했다. 이에 지난해 9월 취임한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같은 해 11월부터 2차 조사를 결정했다. 2차 조사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일부 법관 동향을 수집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됐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며 대법원에 요청한 사실도 확인됐다.

다만 법원행정처와 의혹 당사자들이 비밀번호 전달 등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와 컴퓨터 파일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특조단을 구성해 3차 조사를 지시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동향만 파악하고 리스트는 없었다’는 결론 속에 모든 사람이 면죄부를 받는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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