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다음달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을 공식 논의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1월부터 이어져온 원유감산 체제가 1년6개월 만에 끝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당장 25일(이하 현지시간) 하루에만도 4%나 급락하는 등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다만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공급차질 우려가 여전한데다 사우디를 제외한 OPEC 회원국들의 입장이 불투명해 다음달 22일 회의를 앞두고 유가는 당분간 급등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 폐막일인 26일 기자들에게 “산유량이 지난 2016년 10월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7일 보도했다. 그는 “다만 결정은 6월에 열리는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들 간 회의에서 내려질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들은 원유공급 제한을 위해 생산량을 하루 180만배럴 감축하는 데 합의하고 지난해 1월부터 이를 실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로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며 100달러 돌파 전망까지 제기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24일 감산 완화에 합의하고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량 감축 조치 완화를 다음달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금보다 하루 100만배럴 정도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지만 노바크 장관의 말대로라면 원유 생산량은 22개 산유국이 감산조치를 내리기 전으로 복귀하게 된다. 소식통은 100만배럴을 증산할 경우 현재 산유국들의 감축량이 애초 계획의 152% 수준에서 100% 수준으로 맞춰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논의가 전해지면서 연일 고공행진을 하던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급락했다. 25일 WTI는 4% 하락한 67.88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 1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역시 전일 대비 3% 떨어진 76.44달러로 마감했다. 최근 국제유가는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른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 감소 우려로 배럴당 80달러까지 올랐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산업광물장관은 이번 감산 완화 논의와 관련해 “산유국들의 목표는 과잉조정이 아니라 시장의 균형”이라며 “사우디와 러시아가 다음달 회의 전에 최소 두 차례 더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앞서 유가가 80달러를 넘어서면 중국·인도 등 원유 수입국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다만 사우디와 러시아 외에 다른 산유국 전체가 이번 증산 논의에 참여한 것이 아닌 만큼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씨티그룹의 상품연구책임자인 에드 모스는 블룸버그통신에 “몇몇 국가가 반대하는 등 논쟁의 여지가 있는 회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여전히 유가 상승을 이끌고 있는 요인들이 산재해 오히려 유가 하락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란 핵 협정과 관련해 미국이 추가 제재를 하거나 이란의 반발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유가 상승세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상품전략책임자는 미 CNBC방송에 “수개월 동안 유가 상승이 계속되면서 브렌트유가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