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좌초 위기에 처했던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낸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순항하던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난기류를 만난 상황에서 다시금 북미대화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북미 간 오해를 불식하며 비핵화 담판에 북미 정상이 예정대로 대좌하게끔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이 회생한 데는 파국을 원하지 않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지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날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한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다”라고 말했다.
미국으로부터 정상회담 취소 통보를 받은 바로 다음날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했다는 것이다.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자는 제안에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으레 선행됐던 의전이나 의제조율 등 복잡한 절차나 형식을 따지지 않고 만나 교착 상태를 풀어보자는 뜻이 담겼다. 실제 김 위원장이 데리고 나온 북측 수행원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등 최측근 2명뿐으로 매우 단출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과거 북한의 행동 패턴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의 회담 제안은 문 대통령이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속전속결로 화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정상회담 취소 발표 뒤 약 9시간 만에 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25일 오전 담화도 많은 북한 전문가들에게는 예상 밖이었다.
김 부상은 과거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이나 막말을 퍼붓는 대신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몸을 낮췄다. ‘트럼프 방식’을 은근히 기대했었다는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 띄우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의 강압 전술에는 자존심을 세우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강수에는 초강수로 나와 상황을 ‘벼랑 끝’에 몰아가던 북한의 전통적 외교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대응이었다.
‘위임’에 따른 담화라는 조선중앙통신의 표현에서 보듯 김 제1부상의 담화 기조를 결정한 것은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등 국제 사회의 경제봉쇄의 결과물이건,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이건 북미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김 위원장이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