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택

정치적 갈등과 시장 혼란 부르는 ‘고무줄 재건축 부담금’

[헤드라인으로 본 핫토픽]

“1억 4,000만원을 어디서 구해요. 차라리 안 짓고 말지”

예상을 뛰어넘는 재건축 부담금을 통보받은 재건축아파트단지 주민들은 패닉에 빠졌다. 다른 재건축 추진 단지의 부담금도 조합 추정보다 많아질 것으로 보여 전문가들은 재건축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첫 부담금 통보 단지부터 산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면서 재건축 등 부동산이슈가 지방선거의 핵심변수로 떠오르고 부동산 시장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한 서울의 주요 주택 공급원인 재건축시장이 위축되면서 오히려 장기적으론 주택 공급이 줄어들며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매뉴얼 따라 산정” vs “이대론 사업 못해”

재건축 부담금 폭탄이 현실화하고 조합 측은 집단 멘붕에 빠지면서 부담금 산정근거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업 종료와 개시 시점 주택가격, 사업기간 주택가격 상승률 등 변수가 널려있어 정확하게 얼마 나올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통보된 금액이 준공 때 그대로 부과될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재건축 부담금’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반포현대 재건축 부담금 1억 4,000만원은 적정하게 산정됐으며 조합원은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에서 2억 원 초과이익도 생긴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재건축 부담금이 과도해 위헌 가능성이 있고 재건축시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시각도 있으나 과도한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주민들은 부담금 산정 근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먼저 현재의 주택가격이다. 서초구청은 반포현대의 경우 지난해 6월 이후 실거래된 적이 없으나 그동안 서울 전역의 집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주변단지의 시세를 평균해서 가격을 산정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미니단지와 주변 대규모 단지를 비교한 가격산정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부 주민은 “지금 당장 우리 집을 팔아도 인근 단지 전세금도 안 나온다”며 “주변 단지 시세를 우리 부담금 산정에 반영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신문에선 ‘강남 재건축 부담금 폭탄은 옆집 때문’이라는 제목이 등장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주택가격 상승률과 준공시점 주택가격이다. 구청 측은 최근의 집값 상승세가 5년간 지속된다는 가정 아래 부담금을 산출했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책으로 주택가격 상승세가 꺾인 상황은 반영이 안 된 것이다. 미래 주택가격 변동률 예측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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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들쭉날쭉한 공시가이다. 김학규 한국감정원장은 “시세 반영비율이 들쭉날쭉해 공시가 논란이 크다”며 “3년 안에 공시가의 형평성을 최대한 높이겠다”고 밝혔다. 부담금 산정 기준 자체의 신뢰성이 약한 상황에서 시세의 어느 정도를 반영하느냐에 따라 재건축 부담금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부담금 산정이 대부분 정부의 어림짐작 예측에 근거하고 있다 보니 갈수록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담금 폭탄에 양도세까지, 살기도 팔기도 어렵다” 지방선거 변수로 부상한 재건축 이슈

양도세 중과, 재건축 부담금 폭탄, 보유세 인상 움직임 등 정부의 잇단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 일각에서는 “집값 진정시키려다 시장 때려잡는 것 아닌가”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또 “강남 아파트값 잡으려다 지방 부동산시장만 초토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서 급기야 재개발, 재건축조합들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키우며 조직적인 반발에 나서고 있다.

서울의 재개발, 재건축 조합들이 연합단체를 결성해 재개발, 재건축 규제 강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서울 미래도시 재개발·재건축 시민연대’를 출범시킨 후 서울시장 후보들의 도시정비사업 관련 정책을 들어보고 이를 토대로 지지후보를 선택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은 “2013년 이전 침체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부동산 불황이 장기화하면 현 정부도 경기부양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 되면서 부동산 정책과 시장에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권마다 바뀌는 부동산정책에 시장만 멍드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잇단 부동산 규제대책으로 일단 집값 상승세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정권에서도 그랬듯이 “집값 상승-규제-시장 침체-규제 완화의 시장 왜곡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시적으로 상승 탄력을 눌러놓는 데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급속한 시장침체의 부작용이 현 정권 또는 다음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서는 시장 혼란 속에서도 응축된 상승 잠재력은 정책 등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튀어 오르게 된다는 시장의 믿음이 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개발, 재건축조합들의 조직적인 집단행동이 더해지면서 부동산을 둘러싸고 정책과 시장 혼란 등 후폭풍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정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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