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기는 것은 음식 만이 아니다. 밥 내오는 엄마의 정은 물론이거니와 수줍게 내민 찻잔에 온갖 설렘이 담기기도 한다. 회사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도자기 그릇에는 청년의 자부심이 담겼고, 닳고 닳은 종지에는 짭쪼롬한 절약정신이 배어있다. 이제는 짝도 안 맞는 4인용 세트에는 내 집 마련의 뿌듯함이 스며 있고, 대대로 물려받은 놋그릇에서는 시집살이의 푸념과 전통의 울림이 동시에 들려온다.
수 백 점의 그릇이 전시장에 나왔다. 다음 달 2일까지 마포구 성미산로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리는 황연주의 개인전 ‘H양의 그릇가게’다. 지난 2016년 경기도 과천의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던 중 땅에 반쯤 묻히고 덮인 그릇더미를 발견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그 지역은 아파트개발로 슬럼화가 진행중이었고 아마도 그릇무더기는 주변 주택에 살던 한 주부가 이사를 가며 버린 것으로 추정됐다. “그릇을 곱게 놓고 잘 덮어둔 것으로 봐서 어쩔 수 없이 이것들을 버리지만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두고 있다는 그 마음이 역력했어요. 발굴하듯 그릇을 파 와 묻은 흙을 씻으며 아깝고 소중한 그릇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심정을 상상하며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시장 중앙의 자개 문갑과 장식장 주변으로 줄지어 선 그릇들 하나하나에는 그것을 사용한 ‘개인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릇세트는 유독 4인용이 많다. 지금은 1인가구가 급증했지만 1980년대 ‘표준 가정’은 4인 기준인 경우가 많았다. 어느 집이나 하나씩 갖고 있을 법한 대중적인 그릇세트는 유행을 보여주고, 88올림픽 마스코트가 새겨진 호돌이 맥주잔이나 보해소주잔의 디자인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릇이 대변하는 ‘사회의 역사’다.
수많은 그릇들 중 작가의 감각을 자극한 것은 유리컵이었다. 1990년대 ‘파카글래스’를 중심으로 한 고가의 크리스탈컵부터 와인잔과 유리컵 등을 따로 모아 소위 “기품있는 아우라”를 짚어봤다.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이들 투명한 잔들만 모아 올려두니 멀리서도 영롱한 빛을 발한다. 일종의 신기루다.
황연주 작가는 기억이 담긴 사물들을 채집해 이룬 작업, 장소를 매개로 기억을 더듬는 작업 등을 펼쳐왔다. “남의 삶과 남의 기억을 빌어와 작업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버렸지만 다른 누군가는 탐낼 그릇이 꽤 있다. 작가는 물물교환을 허락했다. 다른 이의 기억이 깃든 그릇값을 몇 천원, 몇 만원 식으로 값을 매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서 타인의 기억을 빌려온 그릇들이니 갖고 싶다면 화장품이건 손수건이건 다른 그릇이건 그에 합당한 자신의 물건을 가져와서 ‘서로의 기억과 가치를 맞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작가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그릇의 본래 기능이다. 독일 최고의 예술가 중 하나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판화를 제작하면 그의 식구들이 작품을 빼 가 시장에서 곡식·채소와 바꿔오곤 했다는 일화를 들려준 황 작가는 “귀한 작품이 헐값에 팔렸다는 것보다 그 정도로 먹을거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예술가는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기억, 사물 간의 매개자이기에 그릇의 쓸모를 되찾아 주는 게 내가 바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컵이 없어 버려진 예쁜 컵받침 위에 가상의 컵을 드로잉 한 작품들이 그 같은 마음을 담고 있다.버려진 그릇도 각자의 쓰임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욱 더 귀하지 않겠나 되물으며.
한편 일심재단이 운영하는 ‘씨알콜렉티브’는 지난 2016년 11월 말에 개관한 곳으로 운영위원단이 선정하는 연간 4명의 ‘씨알작가’ 공모전과 오세원 디렉터의 기획전 등으로 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