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쏟아지는 검찰 수사 요구... 사면초가 몰린 양승태

법원노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민변도 "梁 구속수사" 촉구 집회

법원행정처, 수사협조 등 방안 논의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비판하는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조계 안팎의 거센 검찰 수사 요구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특정 성향의 판사를 사찰하고 판결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그에 대한 고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검찰 수사 대비에 나선데다 한집안 식구였던 법관들 상당수도 강경 대응으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30일 법원 안팎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5일 특별조사단이 조사보고서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셀프 부실 조사의 여파가 법조계 일부에만 미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보고서에 삼권분립을 무시한 세부사항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그 충격은 정계·시민단체·노동계·산업계·교육계 등으로 빠르게 번졌다. 보고서에서 당시 법원행정처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로 꼽은 재판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부터 통상임금, 키코, KTX 승무원 정리해고,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특히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이 특조단의 조사를 또다시 비껴갔다는 점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강제수사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로써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고발 건수는 지난 29일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총 9건으로 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통합진보당 대책위, 긴급조치 피해자모임 등과 함께 이날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다음주 검찰 고발을 예고했다.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도 “외환파생상품(키코) 사건을 정치적 뒷거래에 이용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재촉하는 집회를 31일 대법원 앞에서 열기로 했다.


피해자들은 나아가 부당한 재판을 다시 해달라는 요구까지 내놓았다.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흥정의 대상으로 이름을 올린 재판에 대해 재심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전날 일반인으로는 사상 처음 대법원 대법정을 점거했던 KTX 해고 승무원들은 이날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직권으로 재심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KTX 해고자를 대변해 이날 면담에 참석했던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노조 등과 함께 조만간 고발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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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폭증하자 김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내부 분위기도 이전보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기존 보고서에 더해 징계 조치가 가능한 관련자들의 사법농단 관여 수준을 정리한 자료까지 모조리 보고받았다. 법원행정처 역시 김 대법원장 지시 아래 29일과 30일 이틀 연속 김창보 차장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조치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검찰 수사 협조, 수사 의뢰, 직접 형사고발 등의 가능성을 모두 다뤘으며 관련자들을 강경하게 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수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KTX 해고 승무원들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 문제에 대해 일선 법관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법원이 검찰 수사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한 조치 마련에 잰걸음 보이면서 다음달 11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쯤에는 양 전 대법관을 비롯한 사법농단 관계자에 대한 처분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28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의 추진 등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성향과 동향, 심지어 재산관계까지 파악하고 학술활동 자유를 침해한 것은 반헌법적 행위”라며 “대법원장에게 이번 조사 결과 드러난 헌정유린행위 관련자들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주장했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자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해서 판결을 쉽게 무시하면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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