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근로시간 단축, 국민 행복 기여하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생산직·대기업에 맞춘 '단축'

소득감소·실업 위험만 키워

中企근로자 위주 현실 반영을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 직장이 있고 둘째, 소득이 많고 셋째, 여가시간이 넉넉한 것이다. 불행을 느끼는 경우는 언제인가. 행복 결정의 정반대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행복경제학의 연구 결과다. 정부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법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일은 피한다. 자칫 일자리와 소득 감소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행복 키움보다는 행복 상실을 더 의식한다. 근로시간 단축보다 소득 감소를 막는 일, 소득 감소보다 실업 막는 일을 우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정부가 실업과 소득 감소 위험을 간과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매달린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일감이 부족하고 최저임금도 너무 올라 근로시간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연장근로 포함,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였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는 노동조합 덕분에 소득 감소와 실업 위험을 걱정하지 않지만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그렇지 못하다. 연장근로수당 덕분에 저임금을 보충했는데 법이 그 길을 막게 됐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가난한 삶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근로시간 법제도도 업종과 직종 관계없이 일률 적용하게 했다. 제조업 생산직 근로자 기준을 서비스업 화이트칼라 근로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는 셈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가동하는 직장인은 업무가 명확하고 출퇴근과 근무가 일치해 근로시간이 명확하다. 그러나 사무실과 연구실 또는 영업현장에서 일하는 직장인은 그렇지 못하다. 일이 몰릴 때와 한가할 때가 있고 업무량의 기복이 크다. 노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권도 크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인다고 사업주가 빡빡하게 나오면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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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정치인은 근로시간 단축을 선거 프레임으로 이용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은 쏙 빼고 장시간 노동을 내버려두겠느냐고 물었다. 유권자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근로시간이 줄면 고용은 증가한다고 했다. 소득이 저하하지 않게 정부가 지원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부작용 없이 법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노동시장의 현실과 50% 이상은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프랑스는 법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했다가 실업이 증가하자 법을 개정해 도로 늘렸다.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단지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20여년 사이 법정근로시간이 ‘48→44→40시간’으로 줄면서 대기업 고용은 격감하고 영세 중소기업 고용은 급증했다. 대기업 고용 비중이 한때 40%였으나 10% 정도로 대폭 추락했다. 무리한 근로시간 단축이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도록 일조한 것이다. 대기업은 로봇 등 무인기계로 대체하거나 해외로 나갔고 대기업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근로자들은 자영업과 중소기업으로 떠밀렸다. 소득 불평등과 대·중소기업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악화됐다.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소득 제고의 기회였지만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근로시간제도가 국민 행복에 기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공장노동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 서비스업 고용 비중이 70%라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둘째, 대기업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 중소기업 고용 비중이 90%에 가깝다. 셋째, 법에 의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버려야 한다. 대기업은 노사자율에 맡기고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넷째,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원한다면 법정근로시간 제도의 적용을 면제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섯째, 근로시간은 줄이되 소득 감소와 실업 위험이 올라가지 않도록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연간 단위 등으로 대폭 유연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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