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中企 적합업종의 역설'…대기업 쫓아내니 김빠진 막걸리시장

투자·경쟁 없어…시장 보호는커녕 역성장 초래

꺼진 불씨 살리려 '대중소 상생협약' 허락했지만

골든타임 놓쳐 대기업 외면…"동반침체 가져온 꼴"




# 지난 2011년 국내 막걸리 산업은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한류 붐에다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출고량이 45만㎘를 넘어섰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막걸리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막걸리 초보’인 대기업들이 중소 업체에 합작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10년 10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고 다음해인 2011년 10월에 막걸리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대기업들은 사업 진출을 포기했다. 급기야 7년여가 흐른 올해 1월에는 막걸리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무반응’ 일색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기간 대기업의 참여와 투자가 사라지면서 국내 막걸리 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중소기업 적합업종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대기업 규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대·중소기업 자율 규제였던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달리 법으로 규제해 5년간 대·중견기업의 사업 확대나 신규 진출을 막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보호가 중소기업은 물론 산업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운영하면서 이미 이러한 부작용은 검증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막걸리다.


막걸리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것은 2011년. 웰빙 바람과 정부의 쌀 소비 촉진 기조, 한류 3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2009년 약 26만㎘였던 막걸리 출고량은 2011년 약 45만8,000㎘로 정점을 찍었다. 일본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미미했던 수출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시장 가능성을 본 대기업들이 막걸리 시장 진출에 앞다퉈 나선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CJ제일제당은 지역 3개 막걸리 제조사와 손잡고 유통과 연구개발·마케팅·수출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CJ제일제당과 손을 잡았던 막걸리 업체 ‘우포의아침’은 월매출 1,000만원에서 협업 후 월 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오리온이 자회사를 통해 참살이엘앤에프를 인수,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이트진로 역시 일본 수출용으로 진로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었으며 롯데주류는 서울탁주의 제품 일부를 수출 대행했다. 샘표와 농심도 막걸리 시장 진출을 검토했을 정도다.

이처럼 대기업들의 진출이 잇따르자 소규모의 막걸리 양조장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2011년 막걸리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고 대기업은 내수시장에서 2년 동안만 판매하고 수출시장에 전념하기로 했다. 오리온·CJ제일제당 등 대기업들은 몇 년 못 가 사업을 접거나 해외 수출로 명맥만 유지했다. 올 4월 CJ제일제당은 국내에서 유통해온 막걸리 제품을 단종하면서 막걸리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이후 막걸리 사업은 하향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막걸리의 일본 수출량은 2011년 3만8,659톤을 기록했지만 2013년에는 1만3,109톤으로 반 토막이 났다. 국내 출고량도 적합업종 지정 이후 매해 줄기 시작했다. 막걸리 인기가 추락하면서 중소 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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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반위는 2015년 1월 막걸리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하는 대신 ‘대중소 상생협약’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당시 중소 제조업체 모임인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한국막걸리협회와 대기업 등은 ‘막걸리 생산 대기업 및 중소기업과 상생협약’을 맺고 힘을 모으기로 했다. 동반위는 이 같은 결정이 침체된 막걸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기대에 불과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운영되는 기간에 막걸리 시장이 바닥을 치면서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5년 상생협약으로 전환했을 때는 막걸리 시장이 워낙 침체돼 대기업도 진출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며 “중소기업은 고사하기 직전으로 결과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 1월에는 상생협약도 마무리됐지만 대기업도 어느 곳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시장이 된 상태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기업을 몰아내다 되레 시장을 죽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막걸리 사례를 놓고 ‘동반 성장’이 아닌 ‘동반 침체’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피해를 본 셈이다.

막걸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생협약이 끝났는지 말았는지 이제는 누구도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며 “만일 그때 대기업이 들어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로 경쟁하고 치열한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 패키지나 디자인·맛이 업그레이드됐다면 이렇게까지 시장이 고꾸라졌을까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비단 이는 막걸리뿐만이 아니다. 두부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전까지 대·중소기업의 매출액이 모두 증가하며 전체 시장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2012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매출이 모두 감소세로 전환된 사례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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