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갑작스럽게 붕괴한 서울 용산 국제5구역 건물을 놓고 상가 세입자들이 정확한 붕괴 원인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세입자들은 붕괴 이전부터 바닥이 꺼지고 건물이 기우는 등 전조가 심각했다고 주장하지만 용산구청과 시공사 측은 “원칙대로 진행했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4일 용산5구역 상가대책위원회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시공사 사업으로 인해 건물 붕괴와 지반 침하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상가대책위원회 이름으로 구청에 민원을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에 대해서도 “인허가와 안전진단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기자들과 사정당국이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시작된 발파 소음과 진동은 평소 인근 상가건물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근 백반음식점 관계자 최모(60)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파 소음이 들려 천장이 꺼지는 줄 알았다”고 전했고 식당 ‘숯불석쇠’를 운영하는 김봉진(54)씨도 “재개발 후부터 식당 앞 도로가 자꾸만 꺼지고 싱크홀이 생겨 벽돌로 막으며 버텼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날 식당 앞 도로는 사람 주먹 크기 만한 구멍이 나 있었고 지반이 움푹 파여 물이 고여 있었으며, 땅이 갈라진 흔적도 보였다. 이들은 지난해 세 차례나 민원을 넣었지만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며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용산5구역 주민들과 도시공학 전문가 진단에 따르면 해당 상가건물은 모래 지반 위에 콘크리트와 벽돌을 올린 뒤 가운데를 철근으로 지지하는 ‘매트(MAT)’ 공법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철근 기둥을 지반에 직접 심은 건물보다 진동과 소음, 충격에 취약했고 건물 안정성도 낮았다고 세입자들은 입을 모았다. 현장을 방문한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용산구 일대 모래 지반에 콘크리트 매트를 깔아 건물 안정성이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갈라진 도로 상태를 볼 때 공사가 지반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근 건물에 입주한 부동산 관계자도 “다른 상가건물은 철근 기둥으로 건물을 지지했지만 이번에 무너진 건물은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져 평소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전했다.
반면 구청과 H시공사는 “법과 원칙대로 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행 국토교통부 표준발파공법 지침에 따르면 공사현장이 노후화된 주변 건물로부터 20m 떨어져 있으면 무진동 공법을, 40m 떨어져 있으면 미진동 공법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 관계자는 “현행 국토교통부 지침에 맞게 주변 건물의 안정성을 다 확인했고 40m 이격해 미진동 공법을 썼다”며 “설계 당시 측정한 진동도 기준치보다 훨씬 낮았다”고 반박했다. 용산구청 측은 오는 7일 국립과학수사원의 붕괴 원인 조사가 있을 때까지 취재에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 화재감식팀과 서울 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45명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 30분 동안 붕괴 건물 합동감식을 실시했으나 붕괴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폭발 가능성은 낮은 같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용산구청 관계자와 시공사 관계자 등 건물과 관련된 이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다은·서종갑기자 down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