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논란이 전·현직 대법원장 간 충돌 사태로 번진 가운데 일선 판사들은 잇따라 “성역 없이 수사하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줬다.
김 대법원장 역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의견에 무게를 싣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가 법원 전체 여론을 얼마나 흔드느냐에 따라 다음주께 예상되는 김 대법원장의 최종 결단 방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단독판사 50명과 배석판사 72명은 4일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결의했다. 사실상 검찰 수사 필요성을 전제로 한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은 판사 수만 340여명으로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법원이다.
서울가정법원 단독판사 12명, 배석판사 8명도 이날 회의를 열어 “이번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지방법원 단독판사들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 의뢰 등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 법원 외에 서울고등법원·서울남부지방법원·대구지방법법 단독판사들도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의견을 모았다. 앞서 지난 1일 의정부지방법원 단독판사들은 제일 먼저 검찰 수사 필요성을 설파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전국의 일선 법관들이 앞다퉈 검찰 수사를 촉구하자 김 대법원장의 개혁 드라이브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단독·배석판사들은 대체로 젊고 경력이 짧은 대신 인원수는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도 김 대법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법원노조 조합원 가운데 93%는 김 대법원장이 관리자로서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노조가 매년 실시하는 이 평가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마지막 해 11%대의 적합 평가를 받았다.
김 대법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출근길에 “각급 판사회의를 비롯한 의견수렴 절차가 진행되는데 현명한 의견들이 많이 제시됐으면 좋겠다”며 “그에 관해 가감 없이 들은 다음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소장파 판사들과 달리 대법관·법원장 등 사법부 고위 인사 대부분은 재판 거래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대해 반대 의견을 갖고 있어 최대 변수로 꼽힌다. 이달 1일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간 간담회에서도 상당수 대법관이 대법원 재판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듣는 입장을 취했다”며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