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상고법원 판사 임명 과정에 청와대의 의중을 적극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법원행정처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문제 법관을 감찰하려 한 문건도 공개됐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 8건을 5일 추가로 공개했다.
먼저 2015년 9월 작성된 ‘BH 민주적 정당성 부여 방안’ 문건은 상고법원 판사를 임명할 때 청와대 의중을 반영할 네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CJ(대법원장)는 BH(청와대)와 협의해 상고법원 판사 최종후보자를 선정한다(1안) △CJ는 BH의 의견을 들어 상고법원 판사 최종후보자를 선정한다(2안) △CJ는 정부 등 각계의 의견을 들어 상고법원 판사 최종후보자를 선정한다(3안) △CJ는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들어 상고법원 판사 최종후보자를 선정한다(4안) 등이다. 문건에서는 네 가지 방안 가운데 청와대 입장에서 볼 때 ‘정부’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며 3안이 가장 타당하다고 결론 냈다.
대법관을 증원하면 진보 인사들이 대법원에 들어올 수 있어 위험하다는 의견을 담은 문건도 드러났다. ‘VIP 보고서’ 파일 가운데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 및 시급성’ 문건에는 “민변 등 진보세력이 배후에서 대법관 증원론을 강력 지지하고 있다”며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되면 대법관 증원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진보 인사들의 최고법원 입성을 시도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 법관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 문건에는 출퇴근 시간과 인터넷 사용시각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직무감찰 방안이 담겼다. 이른바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들이 감찰 대상이었다. 출퇴근 시 스크린도어에 남는 신분증 기록과 업무 외 인터넷 사용시간과 판결문 작성 투입시간, 판결문 개수와 분량 등을 축적해 대상 법관을 감찰하는 방식이다. 다만 문건에는 “모든 법관을 상대로 전자적 모니터링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법관 내부 반발과 동요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반적인 모니터링 수단으로는 부적절하고 선별된 문제 법관에 대해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2016년 작성된 ‘판사회의 순기능 제고 방안’ 문건에는 판사회의에서 부적절한 안건이 제기되면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를 통해 “이미지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며 “부당한 요구를 제기하는 판사는 선동적·감정적·독선적·불법적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낙인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원장은 포용적·합리적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일 내부투표를 거쳐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한 문건 410개를 전부 공개하라고 법원행정처에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