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형사 조치 결정을 미뤄 내부 갈등과 사법부 불신을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간이 갈수록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젊은 법관과 형사고발에 반대하는 고참 법관 사이의 분열만 커진다는 지적이다.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결론은 “(관련 문건이) 실행되지 않아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다”였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각계 의견을 종합해 형사조치 여부를 정하겠다”며 검찰 수사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법원장 결단이 미뤄지면서 지난 1일 의정부지법에서 시작된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단독·배석판사들은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가정법원·인천지법도 잇따라 성역 없는 수사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4일 발표했다. 이튿날인 5일에는 서울남부지법 단독·배석판사들과 부산지법 배석판사들이 관련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특히 부산지법 배석판사회의에서는 “사태의 의사결정, 기획, 실행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사람에 대해 수사 요청을 포함한 모든 실행 가능한 후속조치를 촉구한다”며 수사 대상을 특정한 결의문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5일 “대법원 차원의 검찰 고발 때는 법관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일선 판사들의 검찰 수사 촉구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 고법 부장판사들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 법관들이며 법원장을 지내고 다시 재판으로 돌아온 평생 법관도 있다. 이 중에는 대법관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법관들도 많아 이번 사안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 앞서 4일에도 서울고법 판사(지법 부장판사급)들은 결의문에 검찰 수사 관련 내용을 제외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부담스러워 결의문을 내지 않는 법원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견만 내고 다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전지법과 서울회생법원도 전체판사회의를 열었지만 결의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는 “대법원장이 부담감을 덜기 위해 여론을 들으려다가 법관 내부 분위기만 어수선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대법원장이 나서서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발전위원회도 5일 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 대법원장은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은 채 듣기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의 결정은 7일 전국법원장회의와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의혹과 불신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의견 수렴’을 이유로 시간을 끌면서 법원을 둘로 쪼개는 악수를 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