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위치 몰랐던 백제 왕릉급 벽돌무덤, 80년만에 다시 확인

공주 교촌리서 무령왕릉과 유사한 형태의 벽돌무덤 확인

공주 교촌리3호 전축분 북벽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공주 교촌리3호 전축분 북벽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일제강점기 발굴조사 이후 80년 가까이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었던 웅진도읍기(475∼538) 백제시대 전축분(塼築墳·벽돌무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공주시와 공주대박물관은 충남 공주시 교동 252-1번지 일원에서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1939년 사이토 다다시(齊藤忠)와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조사한 결과 미완성 무덤이라고 규정한 백제 교촌리 전축분을 다시 찾았다고 7일 밝혔다. 새롭게 발견한 교촌리 3호 전축분은 무령왕릉처럼 터널형 구조를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무덤의 축조에 사용된 벽돌이 모두 무늬가 없는 네모꼴과 긴네모꼴이며 벽면은 벽돌을 가로로 쌓아서 만들었는데, 이는 무령왕릉이나 6호분과는 다른 모습이라 주목된다.


발굴 조사단은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교촌리 전축분이 무령왕릉 축조를 위한 연습용의 미완성분인지, 아니면 백제 웅진기에 도입된 중국식 상장례 도입과 함께 수용된 전축분의 새로운 유형인지, 무령왕릉 이전에 만들어진 왕릉 격의 무덤인지 등 해당 고분의 구체적인 성격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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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리 전축분의 존재는 1530년(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공주목조(公州牧條) 부분에 “향교의 서쪽에 무덤이 있는데, 백제왕릉이라고 전한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조선 시대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교촌리 고분군이 일제강점기인 1939년 사이토 다다시와 가루베 지온에 의해 발굴조사된 이후부터는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었는데 특히 가루베 지온이 미완성 고분이라고 정의한 이후 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 무령왕릉이 발굴 조사되면서 교촌리 전축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와 함께 공주향교 뒤쪽의 ‘교촌봉’ 정상부에서는 백제 시대 석축 단시설이 조사되었다. 1939년 조사를 통하여 2호 전축분이라고 정의했으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전축분이 아니라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네모꼴의 석축 단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석축 단시설은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며, 주변에서 무령왕릉에서 나온 문양 벽돌과 같은 연화문(蓮花文) 벽돌이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의 중요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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