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무늬만 나아진 민간소비…해외소비 빼면 3.1%로 뚝 떨어져

■수출하강 온다 내수방파제 서둘러야 <상>살아나지 않는 내수

음식·숙박 등 서비스업 성장률 13년만에 최저치

소득주도성장 기대한 저소득층 소득도 8% 줄어

0815A02 민간소비 톱22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민지혜(33)씨는 최근 어머니를 모시고 호주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두 달 치 월급에 육박하는 여행비용 350만원을 마련하느라 30분 거리 회사까지 매일 걷고 점심은 도시락을 챙겨가며 씀씀이를 최소화했다. 민씨는 “다음 휴가 때는 좀 더 저렴한 태국이나 필리핀에 갈 계획”이라며 “저가항공에 민박 등을 활용하면 해외여행이 국내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7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민간소비는 승용차와 가전 등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전 분기보다 0.7% 증가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민간소비는 지난해 1·4분기 2.1% 증가한 이래 2·4분기 2.4%, 3·4분기 2.6%, 4·4분기 3.4%로 꾸준히 오름세를 기록했다. 정부나 주요 연구기관은 이를 두고 “소비는 양호한 개선세”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체감 경기는 그렇지 못하다. 기업 심리를 가늠할 수 있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100 이하인 경우 부정적)를 보면 지난달 내수기업 업황 BSI는 75로 4월(74)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기업들은 내수 부진과 경쟁 심화, 불확실한 경제 상황, 인력난·인건비 상승 등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처럼 민간소비 지표가 현실과 동떨어지는 이유로는 우선 앞선 사례처럼 민간 소비 증가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져서다. KDI가 국내 거주자의 국외 소비에서 비거주자의 국내 소비를 뺀 ‘순해외소비’가 민간소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분석한 결과 지난 1·4분기 기여도는 0.4%포인트로 조사됐다. 3.5%(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의 11%에 해당하는 것으로 순해외소비를 제외하면 순수 국내에서 이뤄진 민간소비는 3.1%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상당한 소비 호조를 이뤘던 지난해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4·4분기 민간소비 성장률 3.4% 가운데 순해외소비 기여도는 1.4%포인트에 달한다. 해외 효과를 제거하면 민간소비 성장률의 41%가 날아가며 2%로 곤두박질친다. 지난해 전체로는 민간소비 증가율 2.6% 중 1.0%포인트가 해외 기여도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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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올 1·4분기 소득은 128만6,7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감소했다. 양극화 정도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5.95로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악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높여주면 ‘소득 증가→수요 확대→경기 활성화 및 일자리 증가’라는 성장 공식이 나타난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이지만 외려 저소득층 소득이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양극화의 결과는 유통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현대백화점의 2017년 VIP 고객의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18.3% 늘었고 신세계백화점 역시 올해 들어 5월31일까지 루이비통·샤넬·구찌·에르메스 등 해외 명품 장르의 신장률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7% 증가했다. 반면 대표적인 서민·자영업자들이 많은 음식숙박업 성장률은 지난 분기 -2.8%를 기록해 전기(-1.3%)보다 부진이 더 깊어졌다. -2.8%는 지난 2005년 1·4분기(-3.5%) 이후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도소매업 역시 1·4분기 성장률이 0.1% 감소했다.

문제는 당장 이런 추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KDI는 최근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소비의 높은 증가세에도 소비 관련 서비스업 경기의 본격적인 개선은 아직 관찰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물가상승률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식료품과 에너지 등의 영향을 빼고 근본적인 소비 수요가 끌어올리는 물가를 뜻하는 근원물가는 2016년 1.6%, 2017년 1.5% 오른 가운데 KDI는 올해와 내년 각각 1.5%, 1.6%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기 이르다고 본 것이다. 민간 소비증가율도 올해 2.8%까지 오르지만 내년에는 2.6%로 떨어질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을 국내 경기 개선과 고용 확대로 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서비스 분야 국내 수요는 많지만 공급 부문 경쟁력이 약해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여가나 문화 등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릴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진혁기자 심희정기자 liberal@sedaily.com

세종=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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