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시장 진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들은 “공공시장은 처음 뚫기가 어렵지 민간시장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말한다. 시장 특성상 경쟁이 치열하지만 연중 고른 일감과 투명한 절차로 거래가 이뤄진다. 대금 결제조건도 좋아 기업 입장에서는 ‘우량 거래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공조달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자신의 상품을 등록하는 것이다. 현재 약 7,000여개 기업이 40만개의 상품을 등록해 전국 5만여 공공기관에 연간 17조원 상당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공공 전자조달 장터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은 거래 규모와 효율적인 전자조달 절차로 국제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다. 상용화된 제품을 구매하는 데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기업이 기술개발을 통해 공들여 내놓은 신기술 융복합 제품을 등록·판매하려는 경우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자. 세상을 바꿔놓은 스마트폰의 탄생은 기존에 존재하던 컴퓨터와 이동전화기의 융합으로 가능했다. 스티브 잡스가 한국의 스타트업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해 우리나라 조달시장 진입을 추진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컴퓨터 규격에도 맞지 않고 이동전화기 규격에도 맞지 않으니 조달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발길을 돌리지나 않았을까. 공공조달시장이 과도한 위험회피 성향으로 인해 소위 규격·인증·증명 등 이미 시장에서 받아들여진 상품만을 요구하는 보수적인 관행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 첫발을 떼는 창업·벤처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조달기업조차도 신제품의 조달시장 진출에 장애물이 있다. 필자는 최근 우수조달기업의 물품을 전시하는 ‘2018년 코리아 나라장터 엑스포’에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통상 철재로만 생각돼온 방화문(放火門) 개념을 혁신해 기능과 성능이 개선된 ‘목재(木材) 방화문’을 개발한 조달업체의 경우 관련 인증기준이 없어 종합쇼핑몰에 진출을 못하고 있었다. ‘태양광’ 기능과 ‘가로등’을 융합한 ‘태양광 경광등’ ‘미세먼지 안내’ 기능과 ‘전광판’ 기능을 접목한 기능성 제품 등은 정부 물품 관리체계에 일치되는 품목이 없어 아예 조달등록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마치 스마트폰이 처음 개발돼 조달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 연상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조달청이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역점을 두고 운영 중인 ‘벤처나라’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벤처나라는 기업의 경영상태나 과거 실적을 따지지 않고 오직 기술과 품질만을 심사·등록하는 나라장터 내 ‘벤처·창업기업 전용몰’로 신기술 융복합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360개사 1,700여개 상품이 등록되고 공급실적도 90억원에 그치고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벤처나라를 통한 초기 실적 및 홍보를 바탕으로 본선무대인 종합쇼핑몰로 진입하고 해외시장으로의 진출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달청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종합쇼핑몰과 벤처나라를 ‘융합’해 신기술 융복합제품들이 대등하게 공공조달시장에서 홍보되고 판로를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관련 규격이나 인증 등이 없다는 이유로 공공조달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신기술 융복합제품들도 벤처나라에 등록되면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연계 검색돼 전국의 수요기관에 홍보 및 판매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공들여 개발한 새로운 제품이 공공조달시장에 제대로 홍보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