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정치 불확실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올 하반기까지 양적완화(QE) 종료를 서둘러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끄는 긴축 행보에 ECB까지 동참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풀린 자금이 빠른 속도로 선진국에 흡수되면서 신흥국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출구전략에 속도를 내면서 비둘기파 성향의 일본은행(BOJ)도 결국 통화정책 정상화로 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글로벌 긴축 움직임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페터 프라트 ECB 집행위원회 위원과 옌스 바이트만 ECB 집행위원회 이사는 이날 유럽의 최근 경제 동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QE 종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프라트 위원도 “고용시장의 호조가 임금 인상을 불러오고 있다는 근거가 있다”며 “임금 인상은 소비자물가 상승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트만 이사도 “물가 상승률이 ECB 목표치(2%)에 견줄 만한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며 “(올해 QE를 종료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은) 그럴 듯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1·4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9%로 직전 분기의 1.7%를 웃돌았으며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전년 동기 대비 1.9%로 집계돼 ECB 목표치에 근접했다. 특히 ECB 집행이사회(GC)가 오는 14일 라트비아에서의 통화정책회의 개최를 앞두고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ECB의 출구전략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ECB의 매파적 발언으로 ‘올해 말 QE 종료,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 인상설’이 고조되면서 시장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독일과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각각 전일 대비 9.6bp(1bp=0.01%포인트), 14.5bp 상승 마감했다. QE 종료는 ECB가 더 이상 국채를 매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채권시장이 대비를 시작한 셈이다. 프랑스 금융그룹 크레디아그리콜의 사이토 나가유지 외환본부장은 “시장이 이탈리아의 문제는 일단 보류하고 눈앞의 문제(ECB QE 종료)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분석했다.
ECB의 QE 종료는 미 연준발 긴축과 맞물려 신흥국 위기를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주가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6월 위기설’의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흥국 위기의 진원지인 아르헨티나와 터키뿐 아니라 인도네시아·필리핀·인도 중앙은행 등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외국인 자본 이탈에 따른 자국 통화 방어를 이미 시작했다. 페르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미국의 통화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신흥국이 외자 이탈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신음하던 터키는 7일 1주 레포 금리를 16.5%에서 17.75%로 1.25%포인트 인상했다. 선진시장의 긴축움직임이 빨라지자 시장 예상을 깨고 깜짝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FT는 “지난달 터키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12.15% 뛰었다. 높은 에너지 가격과 화폐 가치 급락으로 물가상승이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제기돼왔다”며 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ECB까지 긴축을 단행하면 일본 BOJ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6%(연율 기준)를 기록하며 경기가 후퇴한 상황이지만 미 연준과 ECB가 긴축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BOJ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뒤늦은 긴축에 나설 경우 엔화 강세가 뚜렷해져 경제 타격이 심화될 우려가 있어 통화정책 정상화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 일본 당국으로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가 ECB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정치·경제를 주시하는 상황에서 ECB가 QE 종료로 금융시장 불안에 기름을 붓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