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해 선거 유세가 한참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때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하고 유권자는 후보자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모자란다고 말한다. TV토론은 부족한 기회를 보충하며 후보자를 한꺼번에 만나 비교하는 장이 될 수 있다. TV토론이 열리면 ‘시원하다’와 ‘답답하다’의 상반된 평가가 늘 같이 따라다닌다. 후보자가 자신의 정견을 밝히고 상대방과 토론하면서 의혹이 밝혀지면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후보자가 했던 소리를 되풀이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거나 인신공격을 일삼으면 답답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려고 할 때 못한다는 말보다 잘한다는 말을 하고 결과가 나쁠 거라고 하기보다 좋을 거라고 얘기하려고 한다. 선거 유세만 들으면 해당 지역과 국가는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정의와 평화가 넘치고 행복한 세상이 열리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적임자를 선출해 그간에 쌓인 모순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 후에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경험도 많다. 특히 몇몇 지역의 기초단체장은 한두 번도 아니라 서너 차례나 비리 혐의로 구속돼 선거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이다.
이와 관련해 명 제국 시절 왕양명이 제자에게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생활에서 자신을 단련하라고 한 사상마련(事上磨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왕양명은 선험적인 본성을 강화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주자학의 기획을 넘어 외부의 자극을 받아 이리저리 날뛰는 의식을 잘 통제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왕양명은 사람이 꼭 교육을 받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식별할 수 있는 양지(良知)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봤다. 제자들은 왕양명의 제안에 따라 홀로 조용히 있을 때 양지가 어떠한 방해를 받지 않고 모든 상황에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집중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 한 명이 왕양명에게 긴급구조 신호를 보냈다. 말인즉 이러하다. 자신이 선생님과 함께 있거나 일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 때 양지는 어떠한 방해를 받지 않고 그대로 제 길을 찾아간다. 반면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거나 여러 가지 일로 여유를 갖지 못하면 양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어떤 경우 양지와 어긋나는 언행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왕양명은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양지대로 하려면 일을 다 그만두고 조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이 벌어지고 바쁜 시간에 쫓겨 판단을 내리는 현장에서 더 양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을 단련하라는 사상마련과 자신을 돌이켜보며 잘잘못을 따지라는 사상성찰(事上省察)을 제시했다.
얼핏 생각하면 왕양명이 비현실적인 제안을 하는 듯하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데 어떻게 양지에 집중할 수 있으며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시라도 일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제한된 상황에서 판단을 해야 하므로 이런 불평이 사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 한 마디와 내가 내린 한 가지 판단이 모이고 모여 결국 나의 정체성을 이룬다. 나의 정체성과 관련되면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양지는 나중에 미뤄뒀다가 여유가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바삐 움직이는 매 순간 비춰봐야 하는 삶의 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실 따로 현장 따로’ 또는 ‘배우는 것 따로 움직이는 것 따로’라는 ‘따로 인생’이 된다. 왕양명은 따로 인생이 아니라 ‘똑같이 인생’을 위해 구체적인 상황에서 양지를 단련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앞뒤 덮어놓고 무조건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을 선택하기보다 실제로 지역·국가적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물어보고 대답이 시원찮으면 계속 물어보고 그리고 제시한 대답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대비책은 무엇인지 또 물어봐야 한다. 아울러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으면 “토론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검증은 선거 후가 아니라 선거에서 시작되고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