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예의를 지킵시다]美는 의회 윤리규정 542쪽인데…韓은 달랑 A4 한장 뿐

고성·욕설·조롱 등 실제 징계 건수 '제로'

윤리 특위 징계안 반드시 의결로 정비해야

# 지난해 말 슬로바키아의 밀란 마주레크 의원이 유랑민족인 집시족을 ‘반사회적’이고 슬로바키아의 복지 시스템을 빨아먹으려는 ‘기생충’이라고 비하한 혐의로 기소됐다. 마주레크 의원에게는 벌금 5,000유로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슬로바키아 의회의 경우 의원이 인종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면 의원직 박탈과 함께 최고 징역 6년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 2009년 미국의 조 윌슨 공화당 의원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하는데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다. 당일 저녁 윌슨 의원은 바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백악관에도 전화를 해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사과로 끝나지는 않았다. 사건 이후 미국 하원은 ‘예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입법권과 사법권을 이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가를 망신시키고 있다’는 등의 발언은 가능하지만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다, 대통령은 위선자다, 대통령이 성적으로 비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는 식의 발언은 할 수 없게 됐다.


정치인들의 ‘선정적 발언’은 노이즈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다른 국가에 비해 ‘막말’ 제어장치가 지나치게 빈약하다. 견제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 보니 여야 가릴 것 없이 막말을 경쟁하듯 쏟아내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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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제어장치’인 윤리규정은 ‘양’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미국 의회의 경우 상원과 하원 모두 자체 윤리규정(Ethics Manual)을 가지고 있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542쪽, 456쪽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14대 국회 때인 지난 1991년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을 제정했다. A4 한 장 분량이다. ‘양’도 빈약하고 실효성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1991년 국회 내 윤리특별위원회도 설치했지만 지난 27년 동안 국회 윤리규범에 따라 국회의원이 징계를 받은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본회의에서는 부결되거나 의원직 제명이 의결되기 전 사퇴서를 제출하며 사실상 실제 제재를 받은 의원은 0명이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라고 발언한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해 윤리특위에서 제명이 의결됐지만 정작 본회의에서는 부결됐고, 성폭행 혐의를 받은 심학봉 전 의원은 본회의 의결 전 사퇴서를 제출했다. 20대 국회에서도 벌써 17건의 징계안이 윤리특위에 올라왔지만 역시 처리된 것은 한 건도 없다. 파벌정치가 강해 ‘제 식구 감싸기’가 국내 정가보다 심한 일본에서조차 국회법에 따라 1988년 이후 중의원이 등원정지 등의 징계를 받은 사례는 3건이 있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막말 역시 헌법에 보장된 ‘면책특권’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 대한민국 헌법 제45조에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헌법 규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하는 것이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해석된다.

이에 따라 윤리특위에서 징계안이 가결돼도 본회의에서 심의하지 않으면 모두 자동 폐기되는 현실이라도 바로잡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13년부터 윤리규정 정비를 강조해온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선처리 시안이라고 정해놓아야 한다”며 “윤리 심사안이 제출되면 윤리특위는 어느 기한 안에 반드시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종호·하정연기자 joist1894@sedaily.com

송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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