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리뷰-영화 '허스토리'] 어렵게 꺼낸 허스토리, 아직 끝나지않은 히스토리

위안부 할머니 日 정부상대 승소

잘 알려지지 않은 '관부재판' 다뤄

실화 바탕 개개인 삶·애환에 초점

상처 딛고선 그녀들에 용기 얻어

‘허스토리’의 한 장면. 영화는 1992년부터 6년간 이어진 1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법정투쟁을 그렸다. /사진제공=NEW‘허스토리’의 한 장면. 영화는 1992년부터 6년간 이어진 1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법정투쟁을 그렸다. /사진제공=NEW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아들과 함께 누추한 삶을 이어가는 배정길(김해숙)은 일본군 위안부로 유린당했던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90년대 초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며 부산에도 위안부 피해 신고를 받는 사무소가 개설된다. 사무소를 연 이는 배정길이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가족같이 지내던 여행사 사장 문정숙(김희애). 평소 지역 여성을 돕는데 앞장섰던 문정숙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다 배정길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비를 털어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발 벗고 나서게 된다.



영화의 소재는 1992년부터 6년간 10명의 할머니들이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정투쟁인 일명 ‘관부재판’.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소송 중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지만 이들의 작은 승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 1·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쓰고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차례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가던 중 관부재판에 대해 알게 됐고 할머니들의 작은 승리를 대중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고 한다.

‘눈길’(2015), ‘귀향’(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앞서 소개된 위안부 소재 영화들보다 이 영화가 진일보한 점은 ‘허스토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개별 할머니들의 삶과 애환, 이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그리며 한 여성의 발자취와 성장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아이 캔 스피크’가 나옥분이라는 허구의 인물에 ‘미 의회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 청문회’라는 실화를 버무려 우리 주변에 내재된 역사적 비극과 비극을 이겨내는 한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허스토리’는 비교적 덜 알려진 위안부 관련 실화를 바탕으로 역사의 희생양이 됐던 평범한 여성들이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극복하고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돈을 받고 몸을 팔아놓고 이제 와서 보상을 받겠다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손가락질 속에 할머니들은 고통을 속으로 삭이고 그늘로 숨어 들어가지만 재판이 거듭될수록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고 세상의 비뚤어진 시선에 당당하게 맞선다. 법정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이들이 자신들을 ‘국가대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목은 가장 가슴 뭉클한 대목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자기 상처 위에 발 딛고 서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그들에게 막연하게 던졌던 애도와 측은지심 대신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다.

‘허스토리’는 ‘아이 캔 스피크’처럼 코미디의 외피를 씌우지 않았지만 페이소스 짙은 연기로 극중 감초 역할을 하는 예수정의 호쾌한 입담과 김희애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 문정숙의 친구 역으로 등장하는 김선영의 재치 넘치는 대사까지 다양한 장치를 활용, 다소 무겁게만 이어질 수 있는 영화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거침없는 부산 사투리에 일본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며 설득력 있게 캐릭터를 그려냈다. 27일 개봉


서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