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4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마련된 한반도 긴장완화 국면을 중단 없이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북 간 판문점 선언과 북미 간 센토사 합의에 담긴 완전한 비핵화 합의를 북한이 신속히 이행하도록 촉구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이 같은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번 남북 및 북미 간 합의는 북한에 제재·압박을 피해갈 명분만 만들어주고 한미 간 군사동맹의 균열만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판문점 선언과 센토사 합의는 한반도에 70년간 이어졌던 적대적 냉전체제를 종결하고 새 시대의 문을 여는 ‘초인종’이 됐지만 비핵화와 평화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결여됐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로드맵 마련은 추가적인 남북, 북미, 남북미 간 정상·고위·실무급 회담과 주변국의 공조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그런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오는 8월에 예정된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의 조건부 중단을 내세워 북한을 추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UFG와 키리졸브(KR)연습, 독수리(FE)훈련 등 대규모 3대 연합훈련도 모두 중단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조율할 북미 고위급회담이 내년까지 계속되면 KR연습과 FE훈련도 중지될 가능성이 있다. 북미 협상 기간 최대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3대 연합훈련의 중단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연합훈련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문 특보는 이날 이화여대에서 열린 BBC 라디오 프로그램 토론회에서 “남북미 3국 간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연합훈련을 미룰 수도 있다”며 “이미 과거에 연합훈련을 연기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자칫 한국의 방위력 약화나 한미동맹 관계의 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논란도 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한미군사훈련 중단 검토 방침을 밝히면서도 ‘신중히’라는 단서를 단 것도 그런 차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함께 훈련해야 같이 싸울 수 있다(워싱턴 포스트)’는 지적이 이는 등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우리 군 당국도 연합훈련 중단 결정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 면밀한 분석에 나서고 있다. 군은 연합훈련의 중단 상황이 지속될 경우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군의 전략적 작전계획 수립에서 전술 전기 연마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본격 시작된 시기는 지난 1977년부터.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직후부터 팀스피릿 훈련이 시작돼 1992년 중단되기까지 한미 양국군 30만명이 참가하는 자유진영 최대의 군사훈련으로 성장했다.
그런 팀스피릿이 중단됐던 이유는 지금과 비슷했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1차 협상이 진행되며 훈련의 맥이 끊어진 것이다. 다만 이후 북한의 핵 사찰 거부로 팀스피릿은 1993년 재개됐으며 이후 1994년 ‘연합전시증원훈련(RSOI)’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 2002년부터는 독수리훈련에 통합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사시 미군의 대규모 증원에 따른 반격 유형과 증원 전력의 배치와 절차 등을 숙지하는 연례 훈련이 중단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매뉴얼은 남아도 주요 지휘관과 참모들의 교체 주기가 1~2년이어서 연례적 훈련이 없으면 유사시 혼란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이 실전을 경험한 군대라는 점도 한국군에는 아쉬운 대목이다. 실전에서 쌓은 제대(단위 부대) 운용과 개별 병사의 전투기술이 전수되는 통로가 좁아질 수 있는 탓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면 자칫 한미 군 당국의 정책 목표 간 상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연합 훈련 공백을 메우려면 자주 국방 능력 강화와 예산 증가가 필수적이지만 한반도 평화 정착 시 자연적으로 뒤따를 군비 축소와 방향이 엇갈릴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한국군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이지만 정치적·전략적 위험과 예산 지출 증가를 감내할 수 있을 때만 부작용과 후유증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권홍우·민병권·신다은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