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찰팀 24/7] 수사 칼날 무뎌지고 변호인과 곳곳 실랑이…갈 길 먼 '인권경찰'

■'변호인 참여 실질화' 전국확대 그 후 4개월

피의자 인권보호 위해 도입했지만

조사 도중 변호인 개입 범위 모호

민감사안 메모·진술 끼어들기 일쑤

"참여권 방해 진정 넣을까 대응도 못해"

변호인들 "경찰, 여전히 고압적" 반박

"피의자 방어권 구체적 가이드라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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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경찰 조사에 피의자 변호인으로 참석한 박모(가명)씨는 A4용지에 경찰의 질문을 메모했다가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메모 내용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박씨는 “피의자 자기방어권에 침해된다”며 거부했다.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변호인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해당 경찰서장에게 직무교육을 권고했다.

15일 서울 광진구 광진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자기변호노트와 메모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은석기자15일 서울 광진구 광진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자기변호노트와 메모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변호사 참여 실질화 지침’이 전국 경찰서로 확대 적용되면서 경찰과 변호인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변호인들은 “피의자의 자기방어권 행사가 한결 자유로워졌다”면서 환영하고 있지만 일선 경찰들은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변호사 참여 실질화 지침은 경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인권과 자기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해 도입됐다. △조사기일 협의 △의뢰인 옆 좌석 마련 △조사 과정에서 의뢰인과의 소통 기회 보장 △조사 내용 기록 △조사 내용에 대한 의견 진술 △수사관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이의 제기 등을 보장한다. 지난해 9월 서울 31개 경찰서에서 시범운영한 뒤 올해 3월 전국으로 확대됐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실질화 지침이 시범운영됐던 4개월간 변호인의 경찰 조사 입회 건수는 1,920건으로 지난해 전체 변호사 입회 건수의 40%를 차지했다.


이 지침은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피의자들이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실제 지난 15년간 인권위에 접수된 경찰의 인권침해 진정사건 1만7,550건 중 16.2%(2,853건)는 부당수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지 않았다거나 조서 열람 시 빨리 서명을 하고 가라고 독촉했다는 등 기본적인 방어권을 침해당했다는 사례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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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서는 경찰과 변호인들 간 충돌이 종종 일어난다. 경찰은 변호인이 피의자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진술할 경우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입장이다. 피의자 조사 중에 변호사가 끼어든다거나 민감한 수사 내용을 메모한 후 입을 맞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변호인과 피의자가 미리 입을 맞추는 경우도 많아 수사관 입장에서는 변호인이 일일이 진술에 끼어들면 더 불신이 생기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경찰의 고압적 태도가 여전해 피의자 인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유광옥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메모권이 향상된 것은 맞지만 변호인이 진술할 때 끼어들거나 제지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면서 “기밀성이나 신속성이 요구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닌데도 방어권 행사를 막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현장 경찰들은 변호인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매뉴얼화해야 이 같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최근 피의자 조사 때 동석했던 변호인이 술에 취한 채 자신이 검사 출신이라며 ‘옛날에는 여자 경찰은 변호사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며 진상을 부린 적이 있다”면서 “답답했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변호인 참여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진정을 넣을까 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도 “변호사가 좁은 사무실에 테이블을 놓아달라는 등 무작정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며 “대체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자기방어권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수사현장에서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장이 피의자의 인권과 균형을 이루는 접점을 찾아 경찰청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된 방향에 대한 수사 재교육, 인력의 재구성 등 이후 검찰 단계까지 고려해 전반적인 형사 절차에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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