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도 같은 경제 정책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고용이나 소득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청년·노인·저소득자 등 ‘을(乙)’들의 삶의 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의(善意)와는 달리 결과는 정반대다.
15일 발표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증가폭이 급감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 을(乙)의 고용 사정은 특히 나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규제가 되레 약자들의 일자리에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임시일용직 취업자는 지난달 644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23만9,000명 줄었다. 임시일용직은 최저임금 언저리의 저임금을 받고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대표적인 고용 취약계층이다. 5월 전체 취업자 증가 수는 7만2,000명으로 지난 2010년 1월 이후 가장 낮았는데 임시일용직 급감이 결정적이었다. 이들은 올해 들어 매달 10만~20만명씩 취업자가 줄고 있다. 청년 역시 일자리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 지난달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5%로 전년 같은 달(9.2%)보다 1.3%포인트 치솟았다. 5월 기준으로 보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 기반이 약한 65세 이상 노인도 올 1·4분기 실업률이 역대 최고인 7.1%였다.
업종별로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많은 도소매·숙박음식점업의 고용난이 심각하다. 이들 업종은 5월에 일자리가 10만1,000개 없어졌다.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6개월 연속 취업자 감소는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소득별로 봐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하위 20% 이하 저소득층의 무직자 가구 비중은 1·4분기 기준 2015년 43.5%에서 지난해 49.1%, 올해 57.0%까지 올랐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소매·숙박업, 임시·일용직과 청년·노인 등 취약층의 고용 감소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숙박음식업과 도소매업의 올해 최저임금 영향률은 각각 25.9%, 16.1%였다. 영향률이 가장 큰 업종 1, 2위였다.
정부 정책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부동산 규제 여파로 건설업 고용이 위축되고 있다. 건설업 취업자 수는 올해 1월만 해도 9만9,000명 늘었다. 하지만 증가폭은 2월 6만4,000명, 3월 4만4,000명, 4월 3만4,000명, 5월 4,000명까지 쪼그라들었다. 대출·재건축 규제 강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 등으로 투자가 위축돼 고용에까지 악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변명에 가까운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자리 부진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제조업 구조조정 등 영향”이라며 “5월에 봄비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린 것도 일조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영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청와대가 고용난 원인으로 제시한 인구 구조 변화는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올해 급격한 일자리 악화를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인구 구조까지 감안한 ‘고용률’까지 나빠지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용률은 지난 2~5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0.1~0.2%포인트씩 악화됐다.
더욱이 현재 일자리 추세는 정부 전망보다도 안 좋은 상황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상반기 취업자 증가폭을 10만명 후반대로 제시했는데 1~5월 14만9,000명 증가에 그쳤다. 6월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전망을 맞추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 쇼크에 대해 “기저효과 등으로 변명하지 말고 정부 책임을 인정하자”고 한 김동연 부총리의 발언이 청와대 설명보다 믿음이 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제라도 정부 정책 방향을 과감히 수정·보완해야 하는 것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현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비용을 급격히 높이고 각종 규제 강화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면서 고용이 잘 나오리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라며 “이제라도 정책 기조를 과감히 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