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축구 대표팀의 별명은 ‘아즈텍 군단’이다. 지리적으로 아즈텍 문명의 근거지라는 데서 나온 애칭이다. 이번 대회 들어 멕시코는 한 경기 만에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주요 외신들은 멕시코의 승리를 보도하며 주저 없이 ‘브릴리언트(brilliant·눈부신)’ 멕시코라고 표현했다.
18일(한국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F조 멕시코의 독일전 승리에 ‘브릴리언트’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어 보인다. 빠른 스피드와 일사불란한 역습,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헌신적인 수비를 선보인 멕시코는 잘 훈련된 일개미 군단 같았다. 1대0 승리로 대어 독일을 건져 올린 ‘16강 단골’ 멕시코는 7회 연속 16강을 향해 쾌속 순항했다. 지난 여섯 번의 월드컵 16강에서 모두 져 번번이 아쉬움을 남겼는데 이번 대회 현실적 목표로 내건 ‘퀸토 파르티도(quinto partido·다섯 번째 경기·8강)’를 향해 가벼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멕시코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사실 8강 이상을 바라보고 준비해왔다. 대회를 앞두고 하나같이 “빈말이 아니라 우승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냉정히 말해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였지만 팀 내부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런 믿음이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는 사실은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위의 최강팀이자 디펜딩 챔피언 독일전에서 바로 확인됐다.
단숨에 이번 대회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FIFA랭킹 15위 멕시코의 힘은 ‘팔색조 전술’에서 나온다. 상대에 따라, 경기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꿔 상대를 옥죈다. 독일이 가장 잘하는 4-2-3-1 포메이션으로 맞불을 놓은 결과 전반 35분 이르빙 로사노(PSV에인트호번)의 선제골로 성공을 거둔 멕시코는 후반에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5백 또는 6백 전형을 취하면서까지 강력한 수비의 힘을 과시했다. 이렇게 기민한 변화가 가능한 것은 스피드와 체력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10월에 지휘봉을 잡은 콜롬비아 출신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멕시코를 잘 훈련시켰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에 1대4로 진 빚도 화끈하게 되갚았다. 이날은 수비수 미겔 라윤(세비야)을 오른쪽 미드필더로 올리는 변칙이 적중했다. 중원 싸움에서 주도권을 틀어쥔 라윤은 역습 전개는 물론 직접 마무리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원톱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웨스트햄)와 왼쪽의 로사노,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 카를로스 벨라(LA FC)는 톱니바퀴처럼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전방 압박과 함께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냈다.
핵심은 왼쪽 공략이었다. 공격 성향이 강한 상대 오른쪽 수비수 요슈아 키미히(바이에른 뮌헨) 쪽을 끈질기게 공략했다. 키미히의 공격 가담으로 벌어진 왼쪽 공간을 빠른 역습으로 파고들었다. 득점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에르난데스가 욕심부리지 않고 잘 밀어줬다. 네덜란드리그 득점 5위(17골)의 신성 로사노는 한국 대표팀에 경계 1순위로 떠올랐다. 열정적인 멕시코 팬들도 경계 대상이다. 이날 관중석의 거의 절반은 멕시코 관중이었다. 시종 소란스러운 응원과 상대를 향한 거침없는 야유로 경기장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멕시코는 후반 들어 차례로 3명을 교체 투입하며 수비 강화에 역점을 뒀다. 무실점으로 마치기는 했지만 당연히 허점은 있었다. 측면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독일의 간결한 크로스를 연속 허용했다. 수비진의 육탄방어가 성공하지 못하고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리에주)의 선방이 없었다면 멕시코는 승점 3을 챙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독일은 전·후반에 한 번씩 멕시코 골대를 맞혔다.
SBS 해설위원으로 러시아에 간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은 “오소리오 감독은 우리에게는 다른 전술을 쓸 것이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통해 공격에 힘쓸 텐데 이때 상대의 얇아진 수비 라인을 어떻게 뚫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슬란드가 아르헨티나전(1대1 무)에서 보인 모습을 참고하면 좋겠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체력고갈 방지를 위해 무리한 공격을 제한하는 등 전술적으로 아주 잘 준비했다. 투지도 매우 좋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23세 이하 대표팀 간 경기인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의 조별리그에서 멕시코를 1대0으로 눌렀다. 당시 사령탑은 신태용 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