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들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성수동 공장 지대 가운데 ‘섬’ 같은 공간이 있다. ‘모든 이야기의 안식처’라는 슬로건을 달고 있는 ‘안전가옥’이 바로 그곳이다.
지난해 9월 만들어진 ‘안전가옥’은 장르문학 창작자들의 아지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도 창작자를 타겟으로 한 집필실과 서가를 운영하는 곳은 전무후무하다. ‘안전가옥’은 ‘모든 이야기의 안식처’라는 슬로건답게 어떤 소재로 어떤 취향의 이야기를 쓰는 창작자든 환영한다.
북카페가 많은 홍대나 합정이 아닌 성수동에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해 김홍익 안전가옥 대표는 “성수동은 공장지대와 수제화 골목이 자리 잡고 있는 등 전통적으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지역”이라며 “무형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공간을 지향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고 말한다.
‘안전가옥’은 소셜벤처 투자회사 ‘에이치지 이니셔티브(HGI)’와 김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곳으로, HGI의 자회사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 대표도 SF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작가는 아니다. 오히려 글 쓰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삼성전자와 카카오 등 대기업을 거친 소위 ‘제도권 사람’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업계의 관행에 빠지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안전가옥은 출판사-작가 관계가 아닌 중립지”라며 “출판사와 작가를 연결해줄 수도 있고 이야기를 직접 만들 수도 있어 분류가 애매하다”고 말한다. 기존의 판에서 분류되거나 해석되지 않은 새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안전가옥’은 창작자를 위한 공간인 만큼 2·3층에 작가 작업실이 마련되어있다. 부스는 현재 총 16개로 숙식이 가능한 공간은 아니지만 작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상 등 집기가 마련돼 있다. 1층에는 카페와 라이브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라이브러리에는 장르문학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책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북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스트셀러는 찾아보기 힘들다. 라이브러리 한구석에 위치한 책장을 열고 들어서면 20명 가량이 자리할 수 있는 ‘벙커’도 마련되어 있다.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4주에서 8주까지 이어지는 창작 워크샵에서는 시놉시스 만들기, 공포소설 단편쓰기 등 실제 작품 완성에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들과 대담을 나누는 ‘살롱’도 마련되어 있다. 가장 길게 이어진 프로그램은(8회)은 ‘장르의 장르’로 호러 중 토속적인 내용을 담은 ‘토속 호러’처럼 더 세부적인 장르에 대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선비 정신이 있어 책을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책에 대한 약간의 허영이 있는 거 같다”고 지적한다. 그런 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과 대우가 덜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열광한 ‘마블’ 시리즈야말로 전형적인 장르물로, 장르문학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스토리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현재 안전가옥이 발굴한 작가인 스튜디오 멤버는 5명이다. 다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알만한 작품이 나오지는 않았다. 김 대표의 단기적인 목표는 ‘안전가옥’ 시스템이 잘 굴러가는지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이 지금까지 없었던 만큼 좋은 창작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이야기를 선보이고자 한다. 책뿐 아니라 웹소설·웹툰·오디오·드라마·영화 등 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 대표는 “‘안전가옥’ 소속 작가의 작품이 ‘넷플릭스’(미국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지만 직접 프로그램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에서 제작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이자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