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강원 철원군의 한 육군부대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 도중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포탄이 터져 나온 불길은 훈련 중이던 장병들을 덮쳤고 이 사고로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가운데 생존자인 이찬호 예비역 병장은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뜨거운 쇳덩이를 집고 겨우 기어 나와 목숨을 건졌지만 전신 55%의 화상으로 10년간 간직해온 배우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4차례나 이찬호 병장을 방문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진심을 다해 노력했지만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역부족이었다. K-9자주포 업체가 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덧없는 시간만 9개월이 흘렀고 이병장은 전역을 6개월 미루며 치료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병장에게는 고스란히 한 달에 500만~700만원이 드는 치료 비용과 ‘폐허’가 된 몸뚱어리만 남았다. 그러다 지난 6일 순직한 장병 3명은 급작스럽게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고 이 병장에게도 화상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대가 높아졌다. 그간 침묵을 지켜온 정부를 움직이도록 한 것은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의 공허한 약속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발 빠른 대응도 아닌 ‘민초들의 목소리’였다.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최근 청원이 30만명에 달한 가운데 이 병장을 소리 없이 돕고 있는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하 부안대)’이 주목받고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지인을 모아 ‘부안대’를 결성한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이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기업에 마케팅·홍보를 컨설팅하는 전문가다. 박 대표는 지난달 25일 1,000만원을 ‘위국헌신 전우사랑 기금’에 기부하면서 장혜진·하하·루나 등의 가수와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 정민철 MBC 프로야구 해설위원 등의 유명인을 동참시켰다. 두 곳의 성형외과가 이씨에게 피부재생수술과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약속했으며 법무법인에서는 법률 상담을 해주고 디자인 회사에서는 부안대 로고를 만드는 등 재능기부도 이어졌다.
박 대표는 “단발성으로 끝나면 말만 하는 ‘그분’들과 다를 게 없다는 판단으로 각계각층이 모인 자리에서 부안대를 만들고 기부로 마음을 전달했다”며 “심지어 평소에 잘 가는 음식점 사장님부터 자문하는 회사 대표들까지 힘을 더했다”고 말했다.
“보훈처 예산이 5조5,000억원에 달하는데 그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합니다. 군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을 배려해주면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구조도 이해가 가지 않고요. 그 말은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박 대표는 또 국민청원이 이어질 때까지 침묵한 정부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어떤 사과의 말도 없이 사태를 외면해온 제조사 한화테크윈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치 교통사고를 당해 인생이 망가졌는데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고 보험처리를 하라는 말만 남긴 사고자와 같다”고 꼬집었다.
“이병장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화상이 ‘미용’으로 분류되어 치료를 못받는 부분도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부분이에요. 보훈처가 정한 보훈등급이 과연 그들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대해 합리적으로 보상해 줄 수 있는 체계인지 이 기회에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버스 전복사고로 신체가 마비된 전숭보 이병 그리고 이번에 마산함 폭발사고로 사망한 해군부사관 등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일이 너무 많아요”
박 대표는 또 “국민들이 먼저 나서고 끝까지 지켜보면서 책임감을 놓지 않아야 사고발생 당시에만 멋져보이는 허언을 쏟아내고 행동은 하지 않는 위정자들을 움직여 생색만 내는 일을 없앨 수 있다”며 “앞으로 어떤 억울한 사고가 생길 때 내 아들, 내 오빠,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에는 부안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모두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