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일자리 정부, '노오력'은 다 했는가

권구찬논설위원

반성없는 정책독주 계속되면

고용절벽에 국정동력 위협해

일자리 만드는데 왕도는 없어

역지사지의 발상 대전환해야




얼마 전 SBS 스페셜 ‘취준진담’ 편을 흥미롭게 봤다. ‘노오력 인력사무소’에서 실시한 역지사지의 구인·구직 프로젝트다. ‘노오력’은 일반적인 노력을 뛰어넘어 고통스러운 노력까지 요구받을 때, 혹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때 청년세대가 쓰는 풍자적 표현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의 의미도 있어 고용절벽인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이 프로그램은 6명의 취업준비생이 면접관 역할을 맡고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중소기업 대표와 중견기업·스타트업 임원 등 3명이 면접을 보는 포맷이었다. 그런데 취준생의 선택 결과가 뜻밖이었다. 6명 가운데 2명이 어느 곳에도 입사원서를 내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취준생 3명이 한 회사에 몰린 것도 예상을 벗어났다. 그 회사 임원은 취준생 면접관으로부터 “뭘 모르시네”라며 꼰대 취급을 받았다. 이 회사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다른 회사보다 연봉이 높다는 점. 돈을 선택한 것이다. 반대로 한 회사는 오후6시면 사장이 퇴근하라고 종을 치고 주 4.5일 근무를 하는, 누가 보더라도 직원 친화적 문화가 돋보였는데도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받지 못했다. 연봉이 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충격을 받은 회사 대표가 눈시울을 붉힌 장면이 어찌나 짠하던지.

이 결과는 자신의 열정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원하는 젊은 세대의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행태를 잘 보여준다. 노오력 인력사무소 벽에 걸려 있는 ‘열정페이’보다 ‘페이에 열정을’이라는 포스터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방송을 보면서 정부가 내놓은 중소기업 취업 보조금이 언뜻 떠올랐다. TV에 출연한 취준생들이 보조금을 받고서 박봉의 중소기업에 취업할까 싶어서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3년간 대기업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준다. 3년 이후에는 임금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할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어쩐지 조삼모사 같기도 해 또 다른 형태의 열정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가 뒤늦게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자신보다 늦게 들어온 신입 직원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 선배 직원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세금 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정부가 젊은이더러 일자리 눈높이를 낮추라고 권유할 일도 아니다.

관련기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고용동향이 최악으로 치닫자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충격적”이라면서 “경제팀 모두의 책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고용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랏돈을 뿌리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올해 일자리 본예산과 지난해 추경예산을 합친 30조원 가운데 절반쯤 투입했는데도 이 지경이라면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고용의 주체인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마중물을 아무리 퍼부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국정 코드를 맞추려다 반성 없는 정책 독주가 계속돼 고용절벽을 막지 못 하면 국정운영 자체가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 저성장에 실업대란은 최악의 조합이다. 작금의 고용대란이 수년간 누적된 경쟁력 약화의 결과인 측면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현 정부의 면죄부가 못 된다.

청년 백수가 100만명을 넘은 지 오래다.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취준생과 구직단념자를 제외한 게 이 정도다. 직장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취반생(취업반수생),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에 나선 돌취생(돌아온 취준생)이 또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일자리 정부에서 반년 만에 새 일자리가 반의반 토막이 났다면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못 된다.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비용 대비 효율성의 문제다. 미래가 밝지 않아서다. 고용의 주체인 기업의 눈높이에서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정책을 다시 점검해 보시라.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왕도가 없다. 일자리 정부라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하지 않나. 취준생을 대신해 한마디 하겠다. “정녕 노오력은 다했는가.”
chans@sedaily.com

권구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