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다음달 1일로 예고했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22일로 앞당기기로 결정하면서 미국과 EU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복관세 규모는 28억유로(약 3조6,000억원) 상당으로 미국이 EU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에 상응한다.
20일(현지시간)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EU 28개 회원국이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22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과 대상에는 미국산 철강을 포함해 피넛버터·크랜베리·오렌지주스·버번위스키·청바지·오토바이 등이 포함됐다.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우리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EU가 보복으로 맞서며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EU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무역전쟁 확전에 따른 타격을 우려하는 독일 자동차 업계는 미 정부에 자동차 관세 상호철폐를 요청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임러와 BMW 등 독일 대형 자동차 업체는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대사를 통해 이 같은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EU산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EU는 미국산 차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수입차 관세를 25%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 대응은 전 세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터키와 인도도 미국의 ‘관세 폭탄’에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니하트 제이베크지 터키 경제장관은 21일부터 석탄과 자동차 등 미국산 수입품에 총 2억6,650만달러(약 3,000억원)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터키는 세계에서 8번째 규모의 대미 철강 수출국이다. 부과 대상은 석탄과 견과류·쌀·담배·위스키·종이·화장품·유화·자동차·기계장비 등 20여개 품목이다. 인도 재무부도 오는 8월4일부터 미국에서 수입되는 병아리콩과 벵갈녹두의 관세를 60%로, 렌틸콩의 관세를 30%로 각각 인상하는 등 모두 29개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관세를 올린다고 밝혔다. 인도는 당시 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제외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과 이미 관세폭탄 주고받기에 돌입한 중국도 무역전쟁의 불길이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화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몽둥이를 들고 협상하는 행태는 쓸데없는 일이며 이성을 잃은 이 같은 행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가오 대변인은 또 오는 2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과 유럽 간 경제무역 고위급대화에서 보호무역주의 반대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도 미국과 주요국 간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를 잇따라 표명하고 나섰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0일 “무역정책 변환이 경기 전망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면서 “처음으로 미 재계가 투자·고용을 연기하기로 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루는 사례에 대해 듣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이런 상황이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낙관론을 가질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