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난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제 분쟁이 확산하고 글로벌 빈부 격차가 심해진 탓에 새 보금자리를 찾아서 목숨을 걸고 떠나는 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 입장에서는 이들이 여간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나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에다 경제난까지 심해져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무조건 수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간간이 난민 출신이 벌이는 테러나 범죄행각도 각국 정부와 자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대목이다. 가히 ‘난민 포비아(Refugee-phobia)’라고 할만하다.
최근 유엔난민기구(UNHCR)는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전 세계 난민과 국내 실향민 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들 숫자는 1년 전보다 300만명 가량이나 늘어난 6,850만명으로 영국 인구(6,657만명)보다 많다. 10년 전인 4,270만명과 비교하면 두 배가 늘어났다. 전 세계 인구 110명당 1명이 강제로 삶의 터전을 떠난 셈이다.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 등 분쟁국에서 난민·실향민이 많이 발생한다. 시리아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소말리아 등 분쟁이 지속하고 있는 10개 나라에서 전체 난민·실향민의 70%를 차지한다. 국가별로는 내전이 만 7년을 넘긴 시리아에서 630만명이 전쟁을 피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 난민이 됐고 620만명은 국내에서 실향민 신세가 됐다. 아프가니스탄도 전년보다 5% 늘어난 260만명이 난민이 됐다. 아프리카 분쟁국인 남수단의 경우 난민 수가 지난해 140만명에서 240만명으로 무려 71%나 증가했다.
문제는 난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는 유럽연합(EU) 등 각국이 점점 부담감을 토로하면서 난민 수용정책을 놓고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EU의 맏형으로 분류되는 독일과 프랑스는 EU의 분열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등에서 반난민을 내세우며 정권을 잡은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EU에 강경한 난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오는 23일(현지시간)으로 2주년을 맞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역시 영국 내 일자리 감소와 난민에 대한 불안감이 주요 원인이었다.
난민에 대한 불안감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가 실시한 모바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800여 명 중 97.7%에 해당하는 8,600여 명이 ‘중국의 외국난민 수용에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시행된 유사한 설문조사와 거의 비슷한 수치가 나온 것이다. 지난해 설문에서는 ‘난민 수용 반대의견’이 97.3%로 집계됐다. 한 웨이보 사용자는 “왜 중국이 미국 같은 나라가 저지른 혼란을 청소해야 하나? 난민 대부분은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오기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이면 중국의 평화가 위협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리윈룽 교수 역시 “난민은 미국, 서방 국가의 비합리적 조치로 발생했으며 중국이 주도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며 “중국은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쟁 고통을 받는 나라의 경제 발전을 도왔다”고 말했다.
나머지 주요2개국(G2) 국가인 미국 역시 불법 밀입국자로 코너에 몰린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법이민 문제의 책임을 야당인 민주당에 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국경은 오랜 세월 큰 혼란과 문제가 돼 왔다”면서 “범죄와 국경 보안에 약한 슈머와 펠로시는 언젠가 이 오래된 문제를 아주 쉽게 해결하는 진짜 합의를 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상·하원에서 민주당을 각각 이끄는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그는 이어 “슈머는 국경 보안을 원하곤 했지만, 지금 그는 범죄도 괜찮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펠로시 대표에 대해서는 “민주당원들은 누구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머물게 국경을 열고 싶어 한다”면서 “이것이 낸시 펠로시의 꿈이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범죄자들에 대한 국경을 활짝 열어 놨기 때문에 미국이 범죄의 온상이 됐다는 주장이다.
난민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예멘인 500여명이 난민을 신청하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제주에서는 올해 들어 예멘인 549명, 중국인 353명, 인도인 99명, 파키스탄인 14명, 기타 48명 등 총 1,003명이 난민으로 신청했다. 특히 내전을 겪는 예멘인의 경우 난민신청이 전년 42명에 견줘 11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난민에 대한 공포가 한반도까지 밀려온 것이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최고 대표는 “국가와 지역 공동체들이 난민·강제 이주자 문제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게 새롭고 더 포괄적인 문제 해결방식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10개국 중 적어도 몇 개 나라에서만이라도 분쟁을 해결한다면 막대한 난민, 실향민 수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글로벌 국가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적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