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 들어 삼성그룹의 행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삼성물산(028260)이 소유하고 있는 서초사옥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삼성물산 서초사옥은 강남역 삼성타운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매물이다. 지난 7일 실시된 입찰에는 이지스자산운용, 코람코자산신탁, 코람코자산운용, 마스턴투자운용, 페블스톤자산운용, 신한리츠운용, 제이알투자운용 등 국내 자산운용사들과 싱가포르계 큰 손 메이플트리를 포함한 외국계 투자자, 농협리츠운용과 손 잡은 NH투자증권과 KB증권 등 10여 곳의 투자자들이 참여했으며, 이 중 NH투자증권, 이지스자산운용, 페블스톤자산운용, 코람코자산신탁, 제이알투자운용 5곳으로 인수 후보군이 좁혀졌다. 삼성물산은 이달 말께 삼성물산 서초사옥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서초사옥이 매각되면 삼성타운의 상징성도 많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도심에서는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1999년 준공) 이후 20여년 만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서소문빌딩(옛 중앙일보 빌딩)을 재건축하기 위해 서울시와 인허가 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소문빌딩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혼이 깃든 호암아트홀이 들어서 있는 삼성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1987년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의 취임식이 호암아트홀에서 진행됐다. 아울러 그간 국내 부동산 대신 해외 부동산 투자에 눈길을 돌렸던 삼성생명도 최근 도심 대형 부동산에 다시 투자했다. 삼성생명은 삼성SRA자산운용이 인수하는 광화문 더케이트윈타워의 투자자로 참여했다. 삼성생명은 국민연금과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이 출자자로 참여한 코어플랫픔 펀드를 통해 143억원을 투자하는 등 약 341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삼성그룹이 강남에서 자산을 매각하고 있는 반면 도심에서는 개발과 투자를 다시 시작하면서 부동산금융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그룹의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강남에서 도심으로 다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그간 국내에서 자산을 매각하기만 했던 삼성이 다시 개발을 추진하고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향후 달라진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의 이 같은 행보가 부동산이 아닌 지배구조 개편과 신사업에 집중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 서초사옥 매각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재편에 대비해 실탄을 확보해놓는 차원” 이라며, “삼성그룹을 향한 지배구조 개편 압박이 그만큼 강하고, 이에 대처하는 이재용 부회장도 굳이 ‘상징성’과 같은 명분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애초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서초사옥을 외부가 아닌 계열사에 매각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지만 삼성은 결국 제3자 매각을 선택했다. 제3자 매각이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쓸데없는 구설에 오를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서초사옥은 역대 서울 오피스 최고가인 3.3㎡당 3,000만원을 거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더케이트윈타워 투자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부동산금융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삼성이 국내 보다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더케이트윈타워 투자는 국내 부동산이라도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에는 적극 투자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고 전했다.
/고병기·한재영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