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법원에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법원 내부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수사 협조를 공언한 김명수 대법원장과는 대조적인 입장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각급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자료 요구는 사실상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일”이며 “법원행정처가 임의제출 요청에 응할 이유도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과 중앙지방법원을 포함해 각급 법원의 일부 판사들은 하드디스크 등을 통째로 제출하라는 검찰 요구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검찰이 임의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해도 하드디스크 등을 통째로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자 너무 단순한 방법”이라며 “요청자료가 광범위한데다 민감한 내용의 사법행정 관련 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므로 법원행정처도 무작정 임의제출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원행정처가 임의제출을 거부하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판사들의 의견이다. 형사소송법상 범죄로 인정되는 혐의가 확실할 때 영장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재 논란이 된 문건에선 재판거래가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고 계획에 그쳐 범죄사실을 특정하기 어렵다. 법관사찰 역시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점으로 지적할 수 있지만 법리상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려워 혐의를 특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지방법원에서는 검찰의 과도한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 입장문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법원 판사는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미 공개된 자료 외에 검찰이 모든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과연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 반발 조짐이 커지자 김명수 대법원장도 검찰 요구대로 수사에 협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또다시 사법부가 내홍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행정처는 제출 자료를 선별해 이번 주 안에 검찰에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19일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증거를 최대한 폭넓게 확보해야 한다며 법원행정처에 보관 중인 자체조사 관련 문건 일체를 요구했다. 특히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과 간부, 심의관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관용차량 이용 내역 등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