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22일 보유세 관련 토론회에서 ‘바람직한 부동산세제 개혁 방안’을 발표하자 전문가와 시민단체, 일반 청중 사이에서는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재정특위가 제시한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안이 참여정부 시절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점, 시가보다 한참 낮은 공시가격 현실화 얘기는 쏙 빠졌다는 점 등이 주로 지적됐다. 토론회가 끝난 뒤 특위의 한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시간이 부족해 논의를 못했을 뿐이며 중장기 개혁과제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개혁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며 “최종 권고안을 만들 때 잘 참조하겠다”고 했다. 최종안에서는 초고가주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해 더 센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나리오보다 좀 더 센 증세?…초고가 자산가 타깃 가능성=현재 정부와 재정특위 안팎에서는 종부세율과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동시에 올리는 보유세 개편안이 유력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강병구 재정특위 위원장 역시 토론회 직후 “(최종 권고안은) 공정시장가액 비율과 명목세율 인상을 적절히 배합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때 쏟아진 지적을 감안하면 시나리오를 미세조정해 초고가 부동산 소유자의 세 부담을 좀 더 늘리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재정특위는 토론회에서 종부세율을 현행 0.5~2.0%에서 0.5~2.5%로 올리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2~10%포인트 인상하는 안을 내놓았는데 고액 자산가에 대해서는 이보다 세율을 더 강화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세 부담 상한이나 공제액을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재정특위 관계자는 “재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물리는 종부세의 누진도를 좀 더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보유세 개편 최종안마저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면 정부도 부담스럽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최우선으로 강조해온 현 정부의 정체성까지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주택자·고령자 등은 충격 완화 방안 고심=다만 증세 강화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정부의 고민이다. 정부는 이미 올해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정책 추진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고용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보유세 강화 과정에서는 1주택자나 고령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에서 은퇴한 뒤 한평생 모은 돈으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구입한 1주택자는 별도 소득이 없는데도 세금만 세질 경우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토론회 때도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승문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세 부담이 높아지지 않게 고려가 필요하다”며 “1주택자도 실거주하는 경우 별도의 배려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1주택자나 고령자에 대한 증세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1주택자의 경우 23억원 이하에 대해서는 현행 세율이 유지되는데다 공제까지 있어 세 부담도 크지 않다”며 진화에 나선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토론회 의견이 국민 의견?…“시장 목소리 좀 더 들어야”=1주택자나 고령자를 배려해준다고 해도 정부와 재정특위가 세율과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동시에 올리는 본격 증세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는 토론회 때 나온 ‘개혁 수준이 약하다’는 지적을 감안해 최소한 동시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내린 성급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서울이나 수도권까지 침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종부세율과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동시에 올리는 증세안이 현실화하면 부동산 거래가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서울경제신문이 KB국민은행에 의뢰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세율(최대 0.5%포인트 인상)과 공정시장가액 비율(5%포인트 인상)을 동시에 올리면 서울 성수 갤러리아포레(170.88㎡)와 서초 아크로리버파크(84.94㎡)를 보유한 2주택자는 세금이 857만원까지 늘어난다. 부동산 시장의 한 관계자는 “공청회 때 토론자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조세 전문가인데다 평소 증세를 강조한 사람들이 많고 시장이나 일반 시민의 의견은 거의 나오지 않더라”며 “좀 더 폭넓은 의견을 듣고 보유세 개편안을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