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6개 연구기관 "청소용역직 아웃소싱 하랄 땐 언제고…정규직 임금깎아 비정규직 고용하라니"

KDI·노동硏·직업능력개발원

예산부족·인력운용 비효율성 개선

임금체계 개편부터 선행돼야

지난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열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선언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지난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열린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선언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명환(가운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노동연구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추지 못한 이유로는 예산 부족과 인력 운용의 비효율성, 미진한 임금체계 개편 등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들 연구기관은 우선 예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에 따라 증가할 비용을 기관들에 전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A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연말 보너스도 줘야 하고 승진에 따라 급여도 높여줘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인건비는 비정규직 비용으로 주고 채용 형태는 정규직으로 하라고 한다.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대로라면 기존 정규직 임금을 깎아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연구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거센 반발에 정부는 정부대로 힘겨워하고 있다. 특히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이끌고 있는 고용노동부 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의 요구대로 예산을 무작정 늘려 지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국정과제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 공공기관 직원에게 승진에 따른 급여 인상분을 공식적으로 반영해주겠다고 밝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재 정규직 전환자를 신규 채용자로 간주해서 기술적으로 예산에 반영해주는 방안을 기관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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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들은 또 청소용역직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조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B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인력 운용의 효율성은 전혀 생각도 않는 정부”라며 “청소용역직 상당수가 민주노총 소속이어서 처우에 대한 협상도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과거 청소용역직은 인력 운용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무조건 아웃소싱하라고 했던 게 바로 정부였다”며 “예산을 쥐고 있는 정부가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솔직히 동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의 오는 30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일정이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상황이 이렇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C기관의 한 관계자는 “과거 각 부처 밑에 있던 연구기관들을 한데 모아 연구회 산하로 둔 것은 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지금의 연구회는 독립성을 저해하는 시어머니 역할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한 관계자는 “연구회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서를 내지 않으면 안 낸 곳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연구기관을 압박했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며 “연구기관들이 계획서를 내지 않으면 고용부 등 정부의 시스템에서 명단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내해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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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기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 갈등이 커지면서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전환 논의가 파행을 맞는 형국이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의 시금석이나 다름없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는 비정규직 노조가 신분 안정과 함께 처우 개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정규직 노조와 대립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이후에도 기존 공사 정규직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게 된다”는 게 비정규직 노조의 주장이다.

여기에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민주노총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신속한 정규직 전환을 압박하기 위해 기존 공항공사 용역업체를 고용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면서 사태가 한층 험악해졌다. 민주노총은 지난 22일 일부 용역업체를 고발하며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을 피하기 위해 교대제를 일방적으로 개편해 불규칙한 출퇴근과 원하지 않는 야간·새벽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발 조치는 공사와 용역업체들의 기존 계약을 만기 전에 해지시키고 정규직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지훈기자 세종=이종혁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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