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이란·일본….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자국 축구의 저력을 과시한 팀들이다. 특히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41위인 모로코는 26일(이하 한국시간) 끝난 B조 최종전에서 2010남아공월드컵 우승팀 스페인(10위)을 거세게 밀어붙인 끝에 2대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모로코는 20년 만에 다시 밟은 본선에서 세계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페널티 지역에서 상대 수비의 핸드볼을 2경기 연속으로 그냥 넘어간 석연찮은 판정이 모로코의 도전을 멈춰 세웠다.
다음 차례는 57위 한국이다. 26일 결전지인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 입성한 한국 대표팀은 27일 오후11시 세계 1위의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 끝장 승부를 벌인다. 2패로 F조 최하위인 한국은 16강 자력진출이 이미 어려워졌다. 같은 시각 열리는 멕시코-스웨덴전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한국이 독일을 1대0으로 이기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주면 한국은 월드컵 역사에 남을 극적인 16강 드라마를 쓴다.
베팅 업체와 외신들은 하나같이 독일의 어렵지 않은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2대0 독일 승리 전망이 가장 많다. ‘전차군단’ 독일은 역대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5전 전승에 19골을 맹폭했다. 최근 3경기에서는 1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독일을 최근 월드컵 경기에서 4연패 중인 한국이 무너뜨린다면 이번 대회 최대 이변으로 기록될 것이다.
월드컵 같은 단기전은 늘 예고 없는 이변으로 화제가 되고는 했다. 징크스가 강팀의 발목을 잡거나 반대로 시원하게 깨지는 무대이기도 했다. 우루과이 ‘넘버2’ 에딘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는 26일 끝난 러시아전(3대0 우루과이 승)에서 처절한 움직임으로 막판 쐐기골을 터뜨렸다. 8년 전부터 이어진 ‘카바니의 저주’를 씻은 것이다. 그동안은 카바니가 득점한 월드컵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항상 졌다. “1%의 확률이라도 붙잡아보겠다”는 한국 대표팀의 간절함은 ‘우리도 혹시?’ 하는 국민의 기대감을 작지만 단단하게 부풀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 2002년의 프랑스, 2010년의 이탈리아, 2014년의 스페인처럼 전 대회 우승팀이 다음 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역대로 독일전에서 잘 싸웠다. 두 번의 월드컵에서는 모두 1골 차로 졌고 2004년에는 국내 평가전이기는 했지만 이동국(전북)의 환상적인 발리슈팅 등으로 3대1로 이기기도 했다. 네 번째 맞대결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역시 손흥민(토트넘)의 몫이다. 멕시코와의 2차전(1대2 한국 패)에서 막판 귀중한 만회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한국 대표팀 중 독일을 가장 잘 아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유소년팀 시절을 포함해 독일에서 7~8년을 뛰었다. 온두라스·보스니아와의 평가전에서 1골 2도움을 합작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가동되지 않았던 손흥민·황희찬(잘츠부르크) 투톱이 독일 격파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1990이탈리아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전패로 조별리그를 마감할 위기에 몰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국가 중 유일하게 승점 ‘0’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독일전은 신태용 감독 체제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압박감 대신 좀처럼 성사되기 힘든 독일과의 승부 자체에 집중한다면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대표팀 윙어 문선민(인천)은 “독일과 붙는 자체로 감회가 새롭고 좋은 선수들과 대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