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민주주의 퇴행의 책임을 물어 헝가리에 대한 표결권 박탈 절차에 나섰다. 유럽연합(EU) 내 극우 포퓰리즘이 급격히 확산되는 가운데 반난민정책의 선봉장에 선 헝가리 정부를 견제하면서 역내 결속을 다지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날 유럽의회의 시민자유·사법·내무위원회(LIBE)가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책임을 물어 헝가리에 대한 표결권 박탈 절차를 밟기로 의결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의회는 헝가리 징계절차와 관련해 “헝가리 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 소수민족의 권리, 헝가리 이주자와 난민 치료에 대한 우려를 촉발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유럽의회는 리스본조약 7조에 따라 EU가 추구하는 가치에 어긋나는 정책을 시행하는 회원국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유럽의회는 오는 9월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헝가리는 “난민은 독”이라고 했던 극우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지난 4월 4선에 성공한 후 반난민 패키지 법안을 전방위로 쏟아내고 있다. 헝가리 의회는 20일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난민에게 재정적 지원이나 체류자격 취득 등의 행위를 하면 최고 징역 1년의 처벌을 받는 내용의 ‘스톱 소로스’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지난달에는 이민자 지원업무를 하는 시민단체를 설립하려면 국가보안기관의 승인을 거쳐야 하고 외국에서 유입되는 자금에는 25% 정도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투자가 조지 소로스가 만든 비정부기구(NGO)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을 겨냥해 정치적 탄압을 가한 것이다. 결국 OSF는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무실을 닫고 활동 근거지를 독일 베를린으로 옮겼다.
외신들은 유럽의회의 헝가리 정부 투표권 박탈 추진이 실제 헝가리의 손발을 묶기보다 반난민정책을 추진하며 EU와 갈등을 빚는 극우성향의 오르반 총리를 압박하기 위한 상징적 움직임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투표권 박탈을 위해서는 EU 전체 회원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EU에 회의적인 폴란드도 반대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의회의 결정과 관련해 “유권자들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며 “더 논의할 것도 없다”고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오언 존스는 “난민구호를 범죄화하는 것은 오르반 총리의 권위주의 강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EU의 가치를 조롱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헝가리를 EU에서 쫓아낼 시간”이라고 오르반 총리를 강력히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