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efficiency)’과 ‘형평(equity)’은 경제학이 다루는 두 가지 핵심 가치로서 공공 정책을 설계함에 있어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국부(國富)를 증대시킨다는 논리를 전개함과 동시에 ‘도덕감정론(1759년)’에서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이타적 본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앨프리드 마셜 역시 대학 강연에서 경제학도는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같이 가질 것을 주문했고 틈만 나면 빈민가로 달려가 도시빈곤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경제상황이 크게 호전되면서 선진 각국들은 이른바 복지국가 건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선진국들은 고도 경제성장과 분배 개선을 동시에 이루는 ‘황금기’를 맞게 됐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경제발전과 분배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이유는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이먼 쿠즈네츠가 남미국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나 일정 발전단계를 넘어서면 점차 소득분배가 개선된다는 이른바 ‘쿠즈네츠 가설(Kuznets Hypothesis)’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스탠퍼드대 박사학위 논문(1974년)에서 한국의 경험을 통해 ‘쿠즈네츠 가설’이 필연이 아님을 입증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의 진흥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개선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어떤 발전전략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90년대 이후 3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2011년)와 1980년 이후 부(富)의 집중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2015년)’은 분배 문제의 심각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소득분배의 악화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만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성장 정책을 추진할 때 분배 측면을 살펴보고 분배 정책을 추진할 때도 성장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는 균형적이 시각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일자리 창출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증가 속도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소득분배도 나빠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이 교체됐다. 이를 계기로 경제 정책의 초점을 일자리 창출에 다시 맞추기 바란다. 이는 최저임금 정책 등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기존의 정책에 대한 수정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는 정책 기조도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도록 변경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공공 부문은 민간 부문에 대한 지원, 인프라 구축 등 생태계 조성에 주력해 민간 부문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 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창출의 보고(寶庫)였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부문에서의 일자리 정책 역시 민간 일자리를 공공 일자리로 바꾸려는 현 정책 기조를 민간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공공 부문이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