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1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소속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 165개를 대상으로 운영실태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취임 직후 대기업 공익법인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며 전수 조사를 예고하면서 처음으로 시행됐다.
현재 정부는 기부문화 확산과 공익 증진을 위해 공익법인이 보유한 의결권 있는 지분 중 5%까지는 상속·증여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 공익법인은 이런 세제혜택을 악용해 편법적으로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거나 경영권을 세습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공정위 조사 결과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은 전체 공익법인에 비해 자산에서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2016년 말 기준 대기업 공익법인의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1.8%로 전체 공익법인(5.5%)의 4배에 달했다. 이 중 대부분(74.1%)은 계열사 주식이었다.
대기업 공익법인 165개 가운데 66개(40%)가 총 119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로 그룹 내 핵심 회사거나 자산규모 1조원 이상인 대형 회사 또는 상장사로 총수일가의 경영권이나 지배력 확대에 유리한 곳이었다. 특히 이 중 57개(47.9%)는 총수 2세도 지분을 함께 보유한 회사였다. 공익법인이 경영권 승계에 우회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은 배경이다. 공익법인은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112개(94.1%) 주식에 대해 상증세 면제 혜택을 받았다.
이처럼 대기업 공익법인 보유자산의 5분의1이 주식인데도 주식이 법인 수익에 기여한 비중은 1.15%에 불과했다.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66개 공익법인 중 2016년에 배당을 받은 법인은 35개(53%)로 평균 배당금액은 14억1,000만원이었다. 전체 공익법인 수입에서 계열사 배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낮은 1.06%였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또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때 모두 찬성 의견을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 우호지분으로서 편법적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이 학술·자선 등 고유 목적 사업을 위해 지출하거나 수익을 거둬들이는 비중은 각각 30% 수준에 그쳤다. 전체 공익법인(60%)의 절반 수준이다.
총수일가 및 계열사와 주식·부동산·용역 등 내부 거래를 한 대기업 공익법인도 100개(60.6%)였다. 그동안 공익법인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받았다.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총수일가 지분율이 규제 기준(30%)보다 높았던 이노션(80%)과 글로비스(43.4%)에 대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을 29.99%까지 떨어뜨렸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소속 공익법인인 현대차정몽구재단에 총수일가의 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기부했다. 핵심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대한 총수일가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는 빠진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 하반기 국회에 제출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대기업 공익법인 규제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공익법인의 내부거래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익법인이 관련된 내부거래에서는 내부감시장치가 전혀 없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의결권 제한 등을 포함해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오는 6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